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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현예슬의 만만한 리뷰] (7) 24시간 이내에 우물을 구하라! 영화 '어 퍼펙트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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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판 '운수 좋은 날'

주어진 시간은 단 24시간

생존을 위해 우물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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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 퍼펙트 데이' 스틸. [사진 이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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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의 고전 소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아시나요? 인력거꾼 ‘김 첨지’의 하루를 그린 소설로, 어찌 보면 가장 비극적인 날을 ‘운수 좋은 날’로 치환해 반어적 어법으로 표현했습니다.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작품성 있는 소설이죠.

영화 ‘어 퍼펙트 데이’를 보고 난 후 제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바로 ‘운수 좋은 날’이었습니다. 이들의 운수 좋았던(?) 24시간을 함께 들여다볼까요?

보스니아 내전 후, 아직 전쟁의 참상이 가득한 마을의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이 오염되었습니다. 우물에 거구의 시체가 빠졌기 때문이죠. 자의든 타의든 우물을 사용하려면 이 시체를 꺼내야 합니다. NGO 구호단체 요원 맘브르(베니치오 델 토로 분)는 시체를 꺼내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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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 퍼펙트 데이'에서 맘브르 역을 맡은 베니치오 델 토로. [사진 이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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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맘브르가 시체를 꺼내는 장면부터 시작하는데요. 처음엔 어두운 화면에서 '물소리'만 납니다. 이후 시체가 들여 올려지는 과정에서 빛이 들어오죠.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물'에 대해 관객에게 먼저 청각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맘브르는 시체를 꺼내다 결국 줄이 끊어져 꺼내지 못하게 되죠. 24시간 이내에 우물을 구해내지 못하면 우물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물을 살려내기 위해 정예 요원(!)들이 투입됩니다.

겉으론 껄렁껄렁해 보이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신념을 가진 B(팀 로빈스 분)와 열정 가득한 신참 요원 소피(멜라니 티에리 분), 까칠한 현장 분석가 카티야(올가 쿠릴렌코 분), 통역 전문가 다미르(페자 스투칸 분), 또 예기치 않게 팀에 합류하게 된 소년 니콜라(엘다 레지도빅 분)까지. 팀이라고 하기엔 뭔가 이상한 조합인 이들이,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우물을 구해낼지(구해낼 수는 있는건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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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통역 전문가 다미르(페자 스투칸 분), 카티야(올가 쿠릴렌코 분), B(팀 로빈스 분), 소피(멜라니 티에리 분), 맘브르(베니치오 델 토로). [사진 이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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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악의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생명을 존중해야 하는 UN은 자신들의 정해놓은 원칙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들의 임무 수행을 방해합니다.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생명이 직결되는 문제를 저버리는 과정에서, 영화는 어떤 것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부조리한 현실을 꼬집어 드러냅니다. 그들이 지켜야 하는건 생명일까요? 아니면 규칙일까요? 답은 뻔한데 말이죠.

지난해 인기리 방영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극 중 유시진(송중기 분)의 대사 중 "험한일 생겨야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머는 필수조건이죠. 심각할때 심각해봐야 심각하잖아요"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보면서 많이 공감했던 장면이었는데요. 이 영화에서도 유머는 필수 조건으로 쓰입니다. 영화 전체를 부드럽게 해 주는 윤활유 역할을 하죠. 전쟁 직후를 담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어두워질 수 있는 부분을 유머로서 위트있게 풀어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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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 퍼펙트 데이'에서 맘브르 역을 맡은 베니치오 델 토로. [사진 이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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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브르 역의 베니치오 델 토로도 인터뷰에서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감독의 작품에는 항상 인간애가 있고 진실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록 어두운 영화일지라도 언제나 웃을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그의 작품은 어떤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고 말했을 정도로, 이 감독에게 있어서 '유머'는 가장 중요한 연출 코드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머는 B의 말장난에서 시작되는데 그가 없었다면 영화는 다소 지루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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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 퍼펙트 데이'에서 B 역을 맡은 팀 로빈스. [사진 이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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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경으로 나오는 장소들은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이름도 생소한 스페인의 그라나다, 말라가, 쿠엥카의 산악지대에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비포장 도로 길, 산을 가로지르는 구불구불한 길들을 부감으로 촬영한 장면들은 우리 눈을 시원하게 합니다. 촬영 감독 알렉스 카란은 휴전 상황 속 마을의 모습을 회색 또는 흑백의 진부한 풍경으로 보이는 유혹을 피하고자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방향으로 촬영했다고 하네요.

처음에 단순히 '아 전쟁영화구나' 또는 '뭔가 터지고 다치고 하겠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이런 류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날때 쯤이면 영화에서 던져주는 많은 질문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리고 '어 퍼펙트 데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와 영화 포스터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죠.

과연 맘브르와 그의 동료들은 우물에서 시체를 꺼내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수인 우물을 돌려줄 수 있었을까요? 영화관에서 확인하시죠.

어 퍼펙트 데이(A perfect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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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 퍼펙트 데이' 포스터. [사진 이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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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ㆍ각본: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출연: 베니치오 델 토로, 팀 로빈스, 올가 쿠릴렌코, 멜라니 티에리

촬영: 알렉스 카탈란

음악: 아르나우 바탈러

장르: 오프로드 휴먼 드라마

상영 시간: 106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개봉일: 2017년 9월 21일



현예슬 멀티미디어 기자 hyeon.yes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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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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