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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송민섭의 통계로 본 교육] 한유총, 재정 지원 확대 요구 앞서 ‘회계 투명성’ 돌아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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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원 국공립 98만원 vs 사립 29만원” / 한유총, 수치 들이대며 재정 확대 요구 / 처우개선비 등 제외 ‘자의적 셈법’ 지적 / “학부모·아이들은 봉인가” 여론도 악화 / ‘휴원’ 압박보다 교육자적 책무 짚어야

세계일보

집단휴업을 예고했던 사립유치원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휴업을 전격 철회했다. 박춘란 교육부 차관(오른쪽 두번째)이 15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정혜 한유총 이사장(왼쪽 두번째)과 합의한 후 국회 교문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유은혜 의원(오른쪽), 안민석 의원(왼쪽)과 손을 잡고 있다.


#1. 98만원 vs 29만원

집단휴업을 예고했다가 전격 철회한 사립유치원들이 휴업 명분으로 내건 이유 중 하나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국가가) 공립유아는 98만원 지원하고 사립유아는 29만원 지원한다”며 “왜 공립 학부모는 공짜인데 사립은 22만원을 추가로 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사립유치원 누리과정 지원금이 유아학비 22만원, 방과후과정비 7만원 해서 총 29만원이라는 점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국공립유치원 1인당 지원비가 98만원이라는 주장에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국공립 누리과정 지원금은 유아학비 6만원, 방과후과정비 5만원 등 11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슨 근거일까. 교육부 관계자는 “전체 유아교육예산에서 사립유치원 쪽에 나가는 유아학비와 처우개선비 등을 제외한 총액을 국공립 원아 수로 나눈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유총 등이 계산한 국공립 지원금 98만원에는 누리과정 지원금 외에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하는 시설비, 인건비, 운영비가 모두 포함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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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유치원 증설 정책 폐기하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소속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와 국공립유치원 증설 정책 폐기를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2. 공짜 vs 22만원

이 같은 계산법에 따른다면 사립유치원 원아 1인당 지원금은 얼마일까. 지난해 사립유치원 총 지원예산은 누리과정비를 포함해 2조331억원이다. 사립유치원에 다니는 원아는 2015년 기준으로 52만1200명 정도. 단순히 이 둘을 나누자면 원아 1인당 월평균 32만5100원을 지원받는 셈이 된다. 참고로 사립유치원 1곳당 지원액은 4억5600만원 정도이고 국공립유치원에 비해 장애학생 및 다문화학생 수용률이 턱없이 낮다.

학부모 추가부담액이 국공립은 공짜, 사립은 22만원이라는 주장도 자의적이라는 분석이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유치원 학부모 평균 부담금 현황’(2016년 7월 기준)에 따르면 사립유치원 학부모 추가비용은 한유총 주장대로 월평균 21만7799원이다. 하지만 국공립유치원 학부모들도 매달 1만1700원을 낸다.

추가금액이 유치원·지역별로 큰 편차를 보이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일례로 서울의 한 사립유치원의 추가부담액은 86만원이고 강원도 공립유치원 학부모는 18만3100원을 자비로 내고 있다. 정부 지원과 별개로 유치원들 노력 여하에 따라 추가경비가 내려갈 여지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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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4% vs 76%

한유총은 정부가 관련 법령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공·사립 구분 없이 모든 유아에게 균등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국공립 늘리기’ 정책을 펴는 데 소요되는 예산을 지난 100여년간 유아교육을 이끌어온 사립유치원에 집중한다면 문재인정부가 지향하는 모든 유아의 완전한 무상교육과 유아교육 질 개선이 이뤄질 거라는 게 이들 주장이다.

팩트는 맞다. 유아교육법 제24조(무상교육)는 ‘초등학교 취학 직전 3년의 유아교육은 무상으로 실시한다’고 돼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유치원 수는 국공립이 52%, 사립은 48%이지만 취원 원아는 국공립 23.6%(16만1340명), 사립 76.4%(52만1200명)이다. 미국과 일본, 스웨덴 등 OECD 국가들이 공사립 구분 없이 보편적인 유아교육 진흥정책을 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맥락과 내용이 다르다. 국가가 처음부터 유아교육에 매진해 공사립 원아 수용률이 우리와 정반대인 OECD와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한국이 유아교육을 보편교육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때는 1980년 이후다. 그 전엔 초·중·고교 예산을 마련하기에도 벅찼다. 또 우리와 유치원 발전사가 유사한 일본 사립유치원의 법인화율은 70% 이상인 반면 한국은 10%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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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보편성 vs 책무성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내 재산과 열정을 들여 이만큼 사회와 교육 발전에 기여해 왔다고 자부하는데, 지금은 그저 비리·적폐 대상으로 매도되고 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교사나 국민들 눈높이는 이들과 사뭇 차이가 난다. 한 유치원교사는 “제가 알고 있는 유치원 원장님 대부분은 아이를 잘 길러내겠다기보다 돈을 벌려는 목적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한유총이 집단휴업을 철회하기 전 청와대 청원사이트 ‘사립유치원 집단휴업 반대’ 청원에는 “국가를 상대로 한 돈 뜯기” “학부모와 아이들을 봉으로 안다” “학부모 부담 완화? 가식 떨지 마라!” 등의 댓글이 잇따랐다. 한유총이 사립유치원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를 요구하기에 앞서 회계의 투명성, 교육자적 책무성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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