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농단과 삼성 뇌물 증거라던 최순실 고영태 장시호의 태블릿
까보니 모두 깡통으로 판명돼도 국민 상당수 여전히 실상 몰라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
일본에 삼종(三種)의 신기(神器)라는 게 있다. 일왕이 즉위할 때마다 이어받는다는 검과 거울과 곡옥(曲玉)에는 그럴싸한 이름이 붙어 있다. '구사나기 검(草薙劍)', '야타의 거울(八咫鏡)', '야사카니의 구슬(八尺瓊曲玉)'이다. 일본 흉내 내는 데는 귀신인 한국은 삼종의 신기 대신 삼종의 태블릿(Tablet)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게 다음 달이면 벌써 1년이 된다. 일본과 한국이 가진 삼종의 신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인 가운데 실제로 삼종의 신기를 본 사람이 없듯 한국인 가운데 삼종의 태블릿을 본 사람도 없고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아는 이도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된 것은 태블릿 3대 중 '최순실 태블릿'으로 불리는 것이다.
검찰이 최순실 태블릿을 포렌식(Forensic) 분석한 게 작년 10월 25일이다. 포렌식이란 '법의학적인'이란 뜻이다. 기기 안의 내용을 지워도 원래 담겨 있던 내용을 역추적해 찾아내는 것이다. 1년 전 진실의 열쇠처럼 여겨졌던 최순실 태블릿은 당연히 국정 농단의 증거가 돼야 했는데 지금은 거들떠보는 이가 없다.
이유가 묘하다. 안에 담긴 사진 1900여 장이 젊은 여성, 여자애,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남자애, 여성용품, 아이돌 스타뿐이기 때문이다. '주인' 최순실의 사진은 2장뿐이다. 2를 1900으로 나누면 0.00105…가 나온다. 즉, 99.98%가 최순실과 관련없는 것이다. 그가 사진관을 운영했던 게 아니라면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은 진작부터 '2016년 10월 25일 태블릿 PC 분석 보고서'를 갖고 있었다. A4 용지 600장 분량이다. 그 문서의 실체가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2부 심리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때 처음 드러났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이 태블릿에는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이 최순실에게 누설한 비밀 문건이 47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검찰은 최순실 태블릿을 '공무상 기밀누설죄'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태블릿 안의 비밀 문건은 47건이 아니라 3건뿐이었고 정 전 비서관에게서 압수한 휴대전화, 컴퓨터의 이메일 송수신 내역만으로도 그의 죄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순실 태블릿은 대체 무엇인가?
두 번째 태블릿은 최순실 비리를 처음 언론에 폭로한 고영태가 2016년 10월 말쯤 검찰에 제출한 '고영태 태블릿'이다. 고영태 태블릿은 '깡통'으로 판명 났다. 깡통이라는 단어는 이달 5일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재판에서 검찰이 쓴 것이다.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고영태 태블릿에 대해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빈 깡통"이라고 했다.
세 번째는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올 1월 5일 특별검사팀에 제출한 태블릿이다. 당시 특검은 "이 태블릿은 최순실이 2015년 7월부터 11월까지 사용한 것이며 최씨 집 짐 정리를 했던 장씨가 보관하고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 안에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뇌물죄로 엮은 어마어마한 문서들이 들어 있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그렇지만 '제2의 최순실 태블릿'으로 각광받았던 장시호 태블릿도 '깡통' 취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태블릿에 들어 있는 내용이 별 게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다 밝혀졌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태블릿 3대는 '삼종의 신기'가 아니라 '삼종의 깡통'인데 내가 이 빈 깡통을 1년 다 되도록 집요하게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국민 다수가 아직도 태블릿 석 대를 국정 농단의 증거인 양 보는 미망(迷妄)에 사로잡혀 있기에 실체를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세상을 격분시켰다가 반전을 거듭한 240번 버스 기사 사례에서 보듯 우리 사회에는 '아니면 말고' 식의 풍조가 만연해 있다. 진실을 끝까지 확인하지 않는다면 터무니없는 일은 반복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깡통 태블릿'이 박 전 대통령 재판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와는 별개로 사회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추구해야 할 자세일 것이다.
[문갑식 월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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