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엔지니어 출신 미스터리 소설가 정재민과 배영익]
소설 '거미집 짓기' '내가 보이니'… 살인과 납치 소재로 한 추리극
"작품 맘에 안 들어 3번 엎기도… 자료 백업하듯 작업일지 남겨"
컴퓨터 엔지니어 출신으로 거의 동시에 미스터리 소설을 펴낸 정재민(왼쪽)·배영익 소설가. “미스터리는 촘촘한 개연성을 바탕으로 호기심을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장르라 공학(工學)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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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설의 소재는 모두 살인과 납치. 소설가가 얼굴에 화상을 입은 의문의 사회복지사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내면에 도사린 폭력의 징후를 추적('거미집 짓기')하고, 인천 덕적도 부근 바닷가에서 시신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사건을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PD('내가 보이니')를 다룬다. 두 작가는 '시뮬레이션'이란 단어를 자주 입에 올렸다. 정씨는 "칠판에 장면을 요약한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시공간의 거리감이 자연스러운지 계속 점검했다"면서 "컴퓨터를 다루던 경험이 이런 시뮬레이션 작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2013년 12월까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휴대전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작가의 삶을 동경하던 그는 2009년부터 소설가 박상우의 창작 강의를 들으며 습작했고, 2011년 중편 '미스터리 존재 방식'으로 일간지 신춘문예를 거머쥐었다. 2013년부터 신작에 매달려 4년 만에 결실을 얻었다. 배씨는 2002년부터 2년간 LG CNS에서 서버를 관리하는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했다. "혼자 어떤 프로젝트에 오래 매달리는 게 적성에 맞았다"고 했다. 적성을 찾은 그는 영화사를 거쳐 2007년부터 본격 소설가로 전향했고, 2010년 낸 첫 장편 '전염병'은 드라마로 제작됐다.
퇴고도 엔지니어 방식으로 한다. 배씨는 "엔지니어는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대신 집에서 다시 되걸어오면서 '왜 버스를 놓쳤는가' 궁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작품이 마음에 안 들면 전체를 싹 다 뜯어고쳤다. 정씨는 원고지 1700장 분량의 장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 새로 썼다. 정씨는 "문장을 수정할 때마다 '작업일지'를 쓴 것이 3500장"이라고 말했다. 배씨 역시 "세 번 갈아엎고 백업 파일을 남기듯 계속 수정본을 남겼다"고 했다. 버전 1·2·3…. 수정본은 '버전 7'까지 나왔다.
고치고 고치면서 소설의 방향은 허구와 진실에 대한 탐구로 확장됐다. "소설 첫 장에 스티븐 킹의 말을 인용했다. '소설의 소임은 거짓의 거미줄 사이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라고. 소설은 허구이지만 그 허구를 통해 인간이 품은 거짓을 폭로하고 진실에 가 닿게 할 수 있다"고 정씨는 말했다. 배씨는 소설에 등장인물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도깨비 감투'를 주요 소재로 등장시킨다. "인간은 무대 뒤로 자기 모습을 숨길 때 훨씬 솔직한 욕망을 드러낸다. 사라졌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본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C언어와 코볼(cobol) 같은 가상의 전자 언어를 다루던 두 사람은 이제 현실의 최극단에서 활자 언어를 부린다. 정씨가 "2014년 1월 퇴사하고 딱 2년만 쓰기로 아내에게 약속했는데 계속 미뤄지고 있다"며 미안해하자 배씨는 "전업작가로 살기 위해 결혼도 미뤘다"고 말한다. 그리곤 "소설만 쓰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미스터리 장르지만 아직은 치명적인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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