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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이코노미조선] '영국의 애플' 다이슨, 청소기 혁신으로 매출 3조7000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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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전회사 ‘다이슨’
창업 24년 만에 매출 3조7000억원‘영국의 애플’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날개 없는 선풍기로 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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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맘스베리에 있는 다이슨 캠퍼스에서 연구원이 무선 청소기 성능을 시험하고 있다./사진=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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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다이슨은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후버 진공청소기가 집안 먼지를 제대로 빨아들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청소기를 여러 번 돌려도 바닥과 카펫의 먼지는 그대로였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기 위해 청소기를 분해한 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먼지로 꽉 막힌 먼지 봉투 때문이었다. 먼지 봉투를 털어내도 남아 있는 미세한 먼지가 쌓여 청소기의 흡입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다이슨은 문제의 원인인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를 만들기로 했다.

◆ 시제품 5127개 만든 끝에 다이슨 청소기 개발
공기를 빠른 속도로 회전시켜 먼지를 분리해내는 사이클론 원리를 청소기에 적용한 것이다. 당시 공장 설비로 사용되던 사이클론은 30피트(약 9.1m) 높이 대형 원뿔로 공기 속 먼지를 회전시켜 빨아내는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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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기는 팬을 돌려 먼지를 빨아들이는 반대쪽으로 공기를 내보내 흡입력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흡입력이 바닥이나 카펫에 있는 먼지를 끌어당긴다. 일반 청소기에는 먼지 봉투가 장착돼 있어 먼지를 포함한 공기가 이곳을 지나고, 먼지는 주머니에 남고 남은 공기만 빠져나간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먼지가 봉투에 쌓이면 청소기의 흡입력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다. 사용자들은 먼지 봉투가 가득 차 흡입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먼지 봉투의 구멍이 막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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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이클론 방식은 먼지 봉투 없이 먼지와 공기를 분리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용해도 흡입력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이클론 방식 청소기는 먼지가 포함된 공기를 파이프로 끌어들인 뒤 이를 원뿔형 통 안에 넣는다. 통 안에 들어간 먼지 섞인 공기는 통 안의 곡면에 부딪히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전한다. 핀볼 게임에서 쇠구슬이 곡선을 돌아 나갈 때와 같은 현상이다. 통이 원뿔 형태로 생겼기 때문에 먼지는 점점 지름이 짧은 뿔 안쪽 면을 따라 회전하고 먼지는 결국 이런 힘에 눌려 원뿔형 사이클론의 맨 아래까지 끌려 내려온다. 사이클론 윗부분은 굴뚝이 된다. 먼지는 빠져나가지 못하지만 공기는 이곳으로 빠져나간다.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순수한 공기일 뿐 먼지는 그대로 남는다.

다이슨은 수천개의 사이클론을 만들어 실험한 끝에 아주 작은 입자까지 걸러내는 사이클론을 개발했다. 사이클론 청소기를 개발하는 동안 다이슨이 만든 시제품은 5127개에 이른다. 듀얼 사이클론의 약자인 ‘DC01’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제품은 오래 사용해도 처음과 같은 흡입력을 100% 유지하는 최초의 진공청소기다. 이 청소기를 바탕으로 다이슨은 1993년 자신의 이름을 딴 기업을 세웠고, 날개 없는 선풍기와 헤어 드라이기 등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았다. 다이슨이 만든 제품들은 현재 세계 65개국이 넘는 곳에서 판매되고 있다. 여러 차례의 혁신을 선보이며 ‘영국의 애플’로 불리는 다이슨은 지난해 매출 25억파운드(약 3조7000억원)를 기록했다. 전년보다 45%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41% 늘어난 6억3100만파운드(약 9400억원)였다.

성공 비결 1
상식을 뛰어넘는 혁신
다이슨이 판매하는 제품은 진공청소기, 선풍기, 헤어 드라이기, 손 건조기, 조명 등 5개다. 경쟁사로 꼽히는 삼성·LG·파나소닉 등이 청소기뿐 아니라 냉장고, TV 등 다양한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것과 비교하면 다이슨의 제품군은 매우 적다. 하지만 다이슨은 상식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제품으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다. 먼지 봉투가 없는 청소기는 물론 날개가 없는 선풍기와 헤어 드라이기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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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슨 엔지니어의 제품 개발 스케치./사진=다이슨



1882년 처음 선풍기가 개발된 이후 3~6개 날개는 선풍기의 기본 부품이었다. 모두가 모터로 날개를 돌려 바람을 만드는 것이 선풍기의 기본 원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날개를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분리하고 청소하기가 어려웠고, 아이들이 손가락을 넣어 다칠 수 있어 위험하기도 했다. 다이슨은 모두에게 당연했던 선풍기 날개를 없애면서 혁신에 나섰다. 비행기 제트 엔진 원리를 이용해 날개 없이도 바람을 만들어내는 선풍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제트 엔진은 바깥 공기를 안으로 빨아들여 연료로 태운 뒤 고온의 기체를 배출하는데, 다시 이 기체를 밖으로 배출하면서 비행기가 앞으로 나가게 된다. 다이슨은 이 원리를 적용한 날개 없는 선풍기 ‘에어 멀티플라이어(Air Multiplier)’를 개발했다. 받침대에 있는 작은 모터와 날개가 공기를 빠르게 빨아들이면, 이 공기는 동그란 고리를 지나며 강한 공기 흐름이 만들어진다. 고리의 바깥보다 안의 기압이 낮아지면서 주변 공기가 안으로 들어와 받침대에서 빨아들인 공기의 양보다 훨씬 많은 공기가 배출되는 것이다. 날개 없는 선풍기는 미국 ‘타임’이 2009년 가장 혁신적인 제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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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헤어 드라이기 모형이 있는 다이슨 본사./사진=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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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슨 수퍼소닉 헤어 드라이어’ 역시 혁신적인 제품으로 꼽힌다. 선풍기와 마찬가지로 이 헤어 드라이어도 날개가 없다. 에어 멀티플라이어 기술이 적용돼, 모터에 유입된 공기가 증폭되고 여기서 나온 바람으로 머리를 말릴 수 있도록 한 제품이다. 일반 헤어 드라이기와 달리 소음이 적다는 것도 특징이다. 다이슨은 자체 개발한 초소형 모터 안에 알루미늄 소재 임펠러를 장착하고, 기존 모델보다 2개 많은 13개 날개를 적용해 모터 회전력을 높임으로써 소음을 줄였다.

다이슨의 혁신은 끊임없는 연구와 도전을 통해 완성된다. 제임스 다이슨은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도약’이라는 망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과정에는 고단한 실험과 오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이슨의 다양한 혁신은 이익으로 이어진다. 다이슨 청소기와 선풍기, 헤어드라이기 가격은 다른 브랜드 제품보다 두세배, 많게는 열배까지 비싸지만 소비자들은 기꺼이 구매한다. 다이슨 헤어 드라이기는 50만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데, 테팔·필립스 헤어 드라이기는 4만~5만원 정도에 살 수 있다.

성공 비결 2
기능성 높인 디자인
다이슨은 디자인이란 단순히 외관을 꾸미는 스타일링이 아니라 제품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기술을 종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다이슨은 연구(Research)·디자인(Design)·개발(Development)을 통합한 ‘RDD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일반 기업은 R&D와 디자인 부서가 분리돼 운영되지만, 다이슨은 디자인도 좋은 기능을 위한 노력이라는 철학으로 디자인과 R&D를 함께 진행한다.

다이슨은 또 혁신과 디자인을 중시하고 지원하기 위해 지식재산권 보호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기업에 라이선스를 제공하지 않고, 이를 침해할 경우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다이슨은 “자기만의 기술을 확보하면 그 기술을 돋보이게 할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며 “좋은 디자인은 제품의 기능에서 시작되며 소비자에게 이 제품이 왜 다른 제품보다 좋은지, 당신이 이 제품을 왜 사야 하는지 설명해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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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드라이어 제품을 시험하는 다이슨 엔지니어./사진=다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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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비결 3
실패 용인하는 조직 문화
다이슨은 관료제가 만연한 일반적인 대기업과는 다른 문화를 가졌다. 창업자인 다이슨과 젊은 직원들은 격의 없이 대화하고 복장도 자유롭다. 다양한 아이디어는 일정한 회의 시간이 아니라 자유로운 의사소통 과정에서 터져 나온다.

무엇보다 다이슨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랫동안 제품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다이슨은 사이클론 청소기를 개발하는 데 5년의 세월을 보냈고, 날개 없는 선풍기를 개발하는 데도 4년이 걸렸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할 때 누구도 재촉하거나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실험이 반복될 뿐이다. 다이슨의 전체 직원 8500명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3500명이 엔지니어와 과학자다. 다이슨은 모든 직원에게 실험하고 또 실험해 결과를 얻어내는 ‘에디슨식 접근’을 강조한다.

장기간의 개발 과정을 실패로 보지 않는 다이슨의 조직 문화는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이슨은 매년 순이익의 30% 정도를 R&D에 투자하는데 지난해에는 500만파운드에 달하는 자금을 R&D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과 미국·싱가포르·말레이시아 본부에서 근무하는 다이슨 엔지니어들은 유체역학, 로봇공학, 전자공학, 미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다이슨이 기업을 시장에 공개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이슨 지분은 100% 창업주 다이슨과 그의 가족들이 보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다이슨은 장기적인 시각으로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단기 이익을 원하는 주주들이 등장한다면 장기간 이뤄지는 다이슨의 다양한 연구·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이슨은 또 불필요한 보고 체계가 없는 조직으로도 유명하다. 다이슨은 자신의 사업 철학 중 하나로 ‘메모 금지’를 꼽으며 “모든 일을 진행할 때 기본 수단은 메모가 아니라 대화”라며 “메모는 문제를 해결할 생각 없이 책임을 피하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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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다이슨 연구원./사진=다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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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차 사업 진출 예상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을 주로 채용하는 것에서도 다이슨의 남다른 조직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다이슨은 경험이 많은 사람보다 이제 막 졸업한 사람을 선호하는데, 이들이 사회 때가 덜 묻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이슨은 부족한 지식은 경험 많은 간부급 매니저가 채워줄 수 있지만,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열정과 창의성은 경험 많은 직원이 대신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다이슨의 새로운 혁신은 전기차에서 이뤄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다이슨이 최근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 애스턴마틴과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서 일하던 인사를 잇달아 영입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와 블룸버그 등 외신은 다이슨이 전기차 사업을 계획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전망했다. 다만 다이슨은 전기차 사업과 관련해 아직 계획이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 PLUS POINT
‘영국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
영국 노퍽 출신인 제임스 다이슨은 영국 왕립예술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다. 대학 졸업 후 엔지니어링 회사에 취직해 차량 운반선(船)인 ‘시트럭’을 디자인했다. 하지만 다이슨의 직장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레바퀴를 대신할 발명품을 만들겠다며 4년 만에 회사를 나온 것이다. 다이슨은 청년 시절 혼자 볼배로(Ballbarrow)라는 정원용 수레바퀴를 만들었는데, 이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동료와 함께 ‘커크-다이슨’이란 회사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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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슨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사진=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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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슨이 개발한 볼배로는 플라스틱으로 된 공에 물을 채운 바퀴로, 땅에 흠집을 남기고 자주 넘어지는 기존 바퀴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었다. 하지만 커크-다이슨은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제품 판매 성과는 좋았지만, 한 미국 기업이 똑같은 제품을 내놓으면서 이익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다이슨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먼지 봉투 없는 청소기 개발에 나섰다.

다이슨이 5년 만에 혁신적인 청소기를 개발했지만, 커크-다이슨은 이 제품을 판매하지 않았다. 그의 동업자가 그의 혁신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동업자는 다이슨에게 “그런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으면 이미 ‘후버’가 개발했을 것”이라며 그의 아이디어를 거부했고, 다이슨은 결국 회사를 나왔다.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난 이 일화는 자신이 세운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와 비교되곤 한다.

그리고 다이슨은 오랫동안 낡은 마구간에서 실험을 반복한 끝에 사이클론 원리를 적용한 청소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바로 성공이 뒤따른 것은 아니었다. 많은 대기업이 다이슨 제품 생산을 거절했고, 싼값에 특허를 가져가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다이슨은 이런 제안을 모두 거절하고 일본에 처음 제품을 판매했다. 일본 회사에 제품당 로열티 10%를 받는 조건으로 특허를 팔아 다이슨 청소기는 일본에서 처음 ‘지포스(G-FORCE)’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이 제품은 크게 히트했고, 일본 상류층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일본 판매를 바탕으로 자금을 모은 다이슨은 업그레이드된 청소기를 완성했고, 1993년 지금의 다이슨을 설립했다.

그는 올해 일흔으로 은퇴 시기가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창업 후 계속 다이슨 경영을 맡았지만 2012년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나 지금까지 수석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한편 그의 아들 제이크 다이슨도 혁신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제이크 다이슨은 37년 동안 수명이 유지되는 LED 조명을 발명했다. 제이크 다이슨이 세운 이 조명회사는 다이슨이 인수했다. 현재 제이크 다이슨은 다이슨 RDD에 새로운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연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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