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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슈만은 칠 때마다 두렵지만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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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만으로 첫 음반, 피아니스트 문지영

부조니 콩쿠르 첫 동양인 우승자

"유명한 피아니스트 되기보다 더 좋은 소리 내는 데 집중할 뿐"

"슈만을 칠 때 혹은 들을 때면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을 느껴요. 다중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감정과 내면을 가장 솔직한 음표로 써낸 작곡가죠."

조선일보

문지영은“슈만의 작품은 처음엔 낯설지만 들을수록 매력이 넘친다”고 했다. /성형주 기자


2015년 9월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문지영(22)이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첫 음반 '슈만 피아노 소나타 1번, 판타지'를 냈다. 지난 1월 독일 하노버 베토벤 홀에서 사흘간 녹음한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1번과 '환상곡' '꽃의 곡'을 담았다. 슈만은 사랑하는 아내 클라라와 자녀들을 뒤로한 채 라인강에 몸을 던졌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뒤 정신병원에서 마흔여섯 생을 마감한 19세기 독일의 천재 작곡가다.

지난 7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문지영은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가 슈만이니 그의 작품을 녹음하는 건 당연하다"며 "나는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음악을 들어보면 인간 자체를 표현해낸, 그래서 숨김없는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핸드백 사이로 손때 묻은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지휘 거장(巨匠) 다니엘 바렌보임이 칠십 평생을 회고하며 삶에 대한 성찰을 써 내려간 '치유의 음악'이었다. 문지영은 웃으며 "읽는 구절마다 소름이 돋는다. 혼란스러웠던 많은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60년 넘는 부조니 콩쿠르 역사상 문지영은 첫 동양인 우승자였다. 그 후 2년, 문지영은 "꽉 차서 오히려 넘치는 시간"을 보냈다. 이탈리아 전역과 남미·아시아를 돌며 연주했고, 그 바쁜 와중에도 재학 중인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전공 수업을 모조리 찾아 들었다. 하지만 콩쿠르 이후 밀려든 여러 고민을 해결할 수 없었다. "의상, 몸짓, 표정 등 음악 외적인 것들에 얼마만큼 신경 써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았어요. 그런데 바렌보임이 음악을 표현하려고 애쓰지 말고, 음악의 일부가 되라고 알려준 거예요."

전남 여수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문지영은 집에서는 멜로디언으로 연습하며 재미를 붙였다. 중학교 1학년 여름, 영재 발굴 캠프에 참여했다가 김대진 한예종 교수를 만났다. 피아노에 집중하고 싶어 학교를 그만뒀다. 문 닫은 동네 피아노 교습소를 월세 20만원 주고 빌려서 전용 연습실로 삼았다. 그가 어릴 때 다녔던 학원이었다.

"피아노와 책상, 이불을 가져다 놓고 3년간 살았어요. 밤새워 피아노 치고 책 읽고 영화를 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죠." 깜깜한 밤, 아무도 없는 교습소였지만 무섭지 않았다. "그때가 그리워요. 일주일에 한 번씩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 김대진 선생님에게 레슨받았는데 몹시 행복했거든요." 그때 김대진이 건넨 악보가 슈만의 '환상소곡집'이었다.

10대 시절 문지영은 가면을 쓴 것처럼 변화 없는 얼굴로 피아노를 쳤다. 김대진은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그녀에게 연극 관람을 권했다. "피아니스트는 배우와 비슷한 게 많다, 연주자는 소리로 전달하는 역할이니까 배우가 관객 앞에서 응축돼 있던 희로애락을 어떻게 터뜨리는지 살펴봐라…." 역사, 우주과학, 소설 등 책 서너 권을 한꺼번에 사놓고 섞어서 읽는다. 바로 전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재밌게 읽었다.

"피아니스트로 유명해지기를 바라지 않아요. 죽을 때까지 피아노와 함께하며 깊고 무거운 소리를 내는 데 집중할 뿐이에요." 문지영은 오는 15~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려준다.

라이징 스타 II: 문지영과 마에스트로 벤자고=15~16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1588-1210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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