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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일사일언] 영화가 사랑한 부다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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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양경미 영화평론가


영화나 드라마 속 촬영지는 언제나 인기가 높다.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그때의 감동을 되살리려 그 장소를 찾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외국 관광객이 배용준, 최지우가 출연했던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를 보기 위해 춘천과 남이섬을 방문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영화 촬영지로 유명하다.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아름다운 경관 덕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어 많은 감독들이 이 도시를 사랑했다.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 특히 많이 알려진 영화는 여주인공 일로나를 둘러싼 세 남자의 사랑 이야기 '글루미 선데이'다. 관광객들은 영화 촬영 장소인 세체니 다리를 건너 어부의 요새, 도나우 강을 앞에 둔 국회의사당을 즐겨 찾는다. 옛 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영화 속 배경인 1930년대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또 다른 장소는 주인공 자보와 일로나가 운영했던 레스토랑 '군델'이다. 최근 부다페스트를 방문해 이 식당을 찾았을 때, 지배인은 식당은 모티브만 제공했고 실제 촬영은 세트장에서 이뤄졌다고 했다. 영화 속 식당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120년 전통의 이 레스토랑에서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식사하러 온 헝가리 가족들이었다. 가족 모임으로 보이는 옆 테이블엔 어린아이들이 5명이나 있었다. 2시간 가까이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은 큰 소리로 떠들거나 돌아다니는 일도 없었고, 다른 손님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으며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영화 속 그 장소들에 들어와 있다는 기쁨에, 현지인들 삶의 반듯한 한 장면을 슬쩍 엿본 듯한 즐거움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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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 영화 촬영지로 인기를 누리며 관광객을 유치하는 부다페스트를 보면서 우리나라를 생각했다. 우리 대도시는 옛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한류'의 힘으로 많은 외국인이 찾는 새 명소도 생겨나고 있다. 높아진 시민 의식과 역량으로 우리 영화·드라마 속 장소가 가진 생명력을 가꾸고 알려 나간다면, 우리나라를 동아시아 콘텐츠 허브로 성장시킬 힘도 거기서 싹트지 않을까.



[양경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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