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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화끈한 낙지볶음에 진한 레드와인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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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맵고 자극적인 韓食에 강한 레드와인 곁들이기 선호

"입안에서 타는 듯한 느낌 좋아"

조선일보

아귀찜과 레드와인. 매운 한국 음식과 레드와인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니술냉 가이드


매운맛과 레드와인은 최악의 궁합이라는 게 세계 와인업계 상식이다. 하지만 고추와 소주로 입맛을 단련한 한국인은, 서양인들은 질색하는 이 조합을 즐기는 독특한 민족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최근 국제학술지 '베버리지스(Bevera ges)'에 실린 와인 칼럼니스트 김상미씨 논문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낙지볶음 등 매운 음식과 레드와인을 페어링(pairi ng·음식 간 궁합 맞추기)함으로써 입안에서 타는 듯한 느낌을 즐긴다"고 했다. 이 논문은 김씨가 4년 전 영국 옥스퍼드 브룩스 대학 석사 논문으로 쓴 '한국 음식과 와인 페어링 기준 개발을 위한 연구'다.

와인, 특히 레드와인에는 타닌(tannin) 성분이 상당량 함유됐다. 타닌의 쓰고 떫은 맛은 매운맛을 더욱 강조한다. 서양 사람들은 이 느낌을 "입안에 불이 난 것 같다"며 싫어한다. 한식에는 매운맛뿐 아니라 김치·된장·고추장·액젓·젓갈 등 다양한 발효 음식과 탕·찌개·국처럼 뜨거운 국물 음식이 많다. 모두 와인을 제대로 맛보기 힘들게 하는 음식들이다. 일부 서양인이 한식을 '와인 킬러(wine killer)'라고 부르는 이유다.

김씨는 일정 수준의 와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일정량의 와인을 꾸준히 마시는 한국인 남녀 138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김씨는 단맛·신맛·짠맛·쓴맛·매운맛이 나는 한식을 제시하고, 이 음식들과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도록 했다. 조사 결과, 단맛·신맛·짠맛·쓴맛의 경우 서양 소비자들과 별다른 차이가 나지 않았으나, 매운맛에선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서양에서는 매운 음식에는 화이트와인, 스파클링와인 등 타닌이 상대적으로 적고 시원하게 마시는 와인으로 매운맛을 완화하려 한다. 하지만 한국인 설문 대상자들은 제육볶음과 레드와인을 곁들이겠다는 대답이 97명(70.3%)이었으며, 이 중 87명은 타닌 함량이 중간 이상급인 레드와인을 선택했다. 낙지볶음과 레드와인을 곁들이겠다는 대답은 58명(42%), 떡볶이와 레드와인을 곁들이겠다는 대답은 42명(30.4%)이었다.

김씨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한국인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수한 페어링"이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매운 음식에 레드와인을 선택하는 비율이 현격하게 높다는 것. 그는 "한국인은 매운맛을 와인 페어링의 심각한 장애로 여기지 않는다"면서 "매운 음식과 레드와인을 함께 먹었을 때 입안이 타는 듯한 느낌을 즐기는 한국인 소비자들이 존재함을 입증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인은 왜 입안이 타는 듯한 느낌을 좋아할까. 김씨는 "자극적인 음식(안주)과 소주를 마시는 데 익숙한 이들이 와인을 마실 때도 소주처럼 강한 느낌을 기대한다"고 추론했다. 그는 또 "아시아인은 타닌이 다량 함유돼 쓴맛이 있는 차(茶)류를 즐겨 마시고 씁쓸한 채소를 많이 먹기 때문에 타닌을 서양인보다 더 잘 견디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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