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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훈범의 시시각각] 패배자의 자리로 돌아가라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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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언제까지 절망케 할 건가

분노는 내 환부 도려내는 데 써라

중앙일보

이훈범 논설위원


오늘날 멍청이가 조선시대 멍청이보다는 똑똑할까? 정답은 ‘노’다. 스마트폰을 쓴다고 스마트한 게 아니다. 정보의 총량이 많을 뿐 멍청하긴 마찬가지다. 역사에 ‘데자뷔’가 많은 이유가 그래서다. 우리네 정치사가 특히 그렇다. 과거에서 못 배우는 어리석은 데자뷔가 차고 넘친다.

‘패배자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2009년 1월 6일자 이 자리에 썼던 칼럼이다.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에서 내리 패배한 통합민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거부하며 벌인 국회 점거농성을 비판한 글이었다. “승자가 어리석다지만 패자는 염치가 없다. (…) 패했으면 승복할 줄 알아야 하는데 사사건건 어깃장이다. 급기야 자신들이 집권할 때 만들었던 법안 통과를 막겠다고 의사당에다 살림까지 차렸다. (…) 정권 초기 인사 잘못으로 승자의 인기가 바닥났고, 뜬금없는 미제 쇠고기 파동으로 한때 그로기 상태까지 갔었더라도 패자의 그런 오만과 안하무인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승자가 잘못하더라도 심판은 유권자의 몫이다.”

이제 같은 비판을 방향만 바꿔서 해야 한다. “승자가 아마추어 같다지만 패자는 염치가 없다. 패했으면 승복할 줄 알아야 하는데 사사건건 어깃장이다. 급기야 핵무장 같은 국운이 걸린 문제를 떼쓰면 될 일처럼 국회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섰다. 정권 초기 인사 잘못이 속출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스텝이 꼬이긴 했어도 패자의 그런 오만과 안하무인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승자가 잘못하더라도 심판은 유권자의 몫이다.”

자유한국당이 과거 민주당만큼 나간 건 아니다. 해머와 전기톱까지 동원됐던 (그래서 국회선진화법이란 희대의 악법을 잉태했던) 그악스러운 폭력 말이다. 영수회담 제안을 거부하고 피켓을 들었다가 비판 여론에 밀려 슬그머니 국회로 돌아온 것뿐이다. 하지만 어떤 물리력보다 더 큰 피해를 입혔다. 이 땅의 보수 국민들을 또 한번 절망케 한 것이다. 과연 제1 야당이라는 한국당은 한 줌밖에 안 되는 극우세력과 영혼이 개발독재 60년대에 머물러 있는 시대착오 세력만을 대변할 것인가. 보수 국민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정치개혁은 외면하고, 현 정권이 실족해 낙상하는 날만 기다리며 그 부끄러운 목숨을 연명하고자 하는가.

정녕 그렇다면 당을 해체하는 게 낫다. 시간이 구차함을 윤택함으로 바꿔주진 않는다. “인순고식구차미봉(因循姑息苟且彌縫), 천하만사가 이 여덟 자 탓에 무너진다”던 연암 박지원의 경고가 다른 뜻이 아니다. 구태를 버리려는 노력 없이 목전의 편안함만 취하고, 잘못된 일을 임시변통으로 구차하게 꿰맞추고 있는 게 딱 한국당의 모양새가 아니고 뭐냔 말이다. 그런 빛 바랜 차양을 두르고 건강한 보수 국민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건 어리석음을 넘어 죄악에 가깝다.

2009년 칼럼은 ‘카요 부인 재판’으로 글을 맺었었다. 좌파 정치인 남편을 비판한 우파 신문 편집장을 쏴죽인 앙리에트 카요 재판으로 1차대전을 목전에 두고 좌우로 갈렸던 프랑스 사회 얘기였다. 그때 카요 변호인의 최종변론은 2009년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이 있다. “우리의 분노를 간직했다가 외부의 적들에게 돌리자. 오랫동안 끌어 온 이 재난을 마무리하고 하나로 뭉쳐 새로이 마주쳐야 할 재난에 맞서 전진해야 한다.”

북핵이란 재난은 이미 현실이 됐다. 이럴 때 헌재소장 후보자를 끌어내렸다고 자축하는 게 공당이 할 일은 아니다. 패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게 먼저다. 승자를 물어뜯을 분노를 스스로 썩은 환부를 도려내고 쇄신, 또 일신하는 데 써야 한다. 그것만이 패자 부활의 길이요 북핵을 극복할 수 있는 국민 에너지를 모을 원천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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