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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길섶에서] 선운사 꽃무릇/이순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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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는 원래 봄철 동백꽃으로 유명하지만 가을에 피는 꽃무릇의 아름다움도 이에 못지않다. 보통 9월 중순부터 10월 초순까지 붉은빛의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꽃무릇은 잎이 없는 꽃대 위에 꽃만 달랑 핀다. 꽃과 잎이 한시에 나지 않는 특징 때문에 상사화(相思花)와 헷갈리기 쉬우나 상사화는 여름꽃이고, 꽃의 색깔도 엄연히 다르다.

때가 이르다는 걸 알면서도 선운사로 발걸음을 재촉한 건 일말의 성급한 기대 때문이었다.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 볕에 혹여 서둘러 꽃을 피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쉽게도 꽃무릇의 향연은 볼 수 없었다. 꽃무릇 군락지이니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없었다면 무심하게 지나쳤을 만큼 잠잠했다. 그런데 가만, 자세히 보니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려는 듯 팽팽히 허리를 곧추세운 초록색 꽃대들이 시야에 확 들어왔다.

그래, 너희도 안간힘을 쓰는구나. 저절로 삶이 열리는 건 아니구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그때를 제대로 맞으려면 치열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세상사의 당연한 이치가 새삼스런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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