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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자살 빅데이터’ 첫 공개]읍·면·동 따라 위험도 큰 편차…지역별 세부대응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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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창 ‘2017~2018 자살위기자 예방대응 지도’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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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자살이 많이 늘어난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이후 20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21만명이 넘는다. 강릉시에 해당하는 인구가 사라진 셈이다. 2015년 한 해에만 1만3513명이 세상을 등졌다. 질병과 가난 속에 죽음을 택하는 노인들, 성적이나 장래를 비관하는 청소년들, 지역·연령을 망라하고 자살자들은 갈수록 늘어간다.

여론조사기관들의 네트워크 ‘공공의창(窓)’이 10일 공개한 ‘2017~2018년 자살위기자 예방대응 지도’는 자살위기자들이 어느 지역에 많이 사는지 보여준다. 공공의창은 읍·면·동 단위까지 분석해 전국을 A~E등급으로 나눴다. 분석 결과 자살위기자는 수도권과 대도시에 몰려 있었다. 17개 시·도 중 서울·인천·경기가 위기자가 많은 A등급이고, 울산·대전·대구는 B등급이었다. 위기자 비율이 가장 적은 지역은 전라북도였다.

구 단위로 봐도 서울은 25개구 중 17개구가 A등급에 속해 가장 취약했다. 그러나 동 단위로 가면 전체 424개동 중 A등급은 34.2%인 145곳으로 떨어졌다. 경기 지역도 44개 시·군·구 중 A등급은 43.2%인 19곳이지만, 읍·면·동으로 보면 558곳 중 186곳(33.3%)으로 낮아진다. 수도권에서도 특정 동네에 자살위기자가 더 많이 몰려 있다는 뜻이다. 자살위기자가 많이 사는 동네의 위험요인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면 광역시·도 단위의 전체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통적인 인구사회학적 위험요인은 ‘열악한 주거환경’이었다. 공공의창이 분석한 자살위기자들은 지역별로 연령·세대구성 등은 달랐지만 주택 면적이나 점유형태에서는 공통점이 뚜렷했다. 주거 면적은 대전·충청 지역을 빼고는 모두 ‘20평 이하’가 가장 많았다. 점유형태는 ‘월세’가 모든 지역에서 1위였다. 서울 강남구 ㄱ동은 자살위기자 비율에서 전국 3491개 읍·면·동 중 11위, 서울에서는 1위였다. 동네 위치만 보면 중산층 이상이 거주하는 곳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오피스텔과 고시원이 밀집해있고, 1인가구가 전체 가구의 60%를 넘는 지역이다.

자살과 주거환경의 연관성은 다른 연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8일 충남도청에서 열린 ‘자살예방 대토론회’에서 김도윤 충남 광역 정신건강 복지센터 부센터장과 최명민 백석대 교수를 중심으로 꾸려진 연구팀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지방의 한 대도시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 169건의 자료와 유가족 면담 내용, 지역 특성 등을 분석해 발표했다.

자살자 평균 나이는 45.2살로 20∼50대가 전체의 68.1%를 차지했고 여성보다 남성이 2.27배 더 많았다. 특히 자살자의 거주 형태는 다세대주택에 혼자 사는 경우가 많았다. 33.7%가 1인 가구였고, 절반 이상이 원룸 등 다세대주택(50.3%)이나 고시텔·여관 등(6.6%)에 살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도시개발에 밀려 슬럼화된 구도심, 도시 외곽의 대규모 아파트단지, 도시 난개발에 따른 유흥가와 신축 원룸 혼합 지역 등에서 자살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연구팀은 이런 지역이 거주민 사이의 소통·유대, 지역 정체성이 부족하고 주거환경이 열악해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지도를 만든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최정묵 부소장은 “자살의 사회경제적 요인이나 문화적 요인을 직접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만, 자살위기자들이 많은 지역에 복지지원을 확대함으로써 이들이 겪는 문제를 완화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지난 7월 자살 종합대책을 입법화하면서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강조했다. 자살예방협회 오강섭 회장(성균관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일본처럼 빠른 통계분석을 통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맞춤형 예방’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백종우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경희대 의대 교수)에 따르면 자살시도 건수는 사망자의 20~40배에 이른다. 백 교수는 “자살은 위기상황에서 의료·복지·사회·법적 서비스 안전망이 없을 때 그리고 연결에 실패할 때 일어난다”며 고위험군을 찾아 서비스와 연결시키는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응급실에 실려 온 자살시도자를 지원하는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가 전국에 42개 있지만 아직은 시범사업에 그치고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내년에 보건복지부에 자살예방 전담부서를 만들겠다”고 했다.

■자살위기자 지도 제작 비영리 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은

지난해 9월 출범한 공공의창은 리얼미터·리서치뷰·우리리서치·인텔리서치·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타임리서치·휴먼리서치·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피플네트웍스·서든포스트·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12개 중소 여론조사기관이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지난해 4·13 총선 때 여론조사기관들이 선거판세 예측에 실패한 뒤 여론조사의 목적과 방법론, 정확도 등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이 기관들은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는 조사, 정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는 조사를 해야 한다’는 데 함께 뜻을 모으고 공공의창을 출범시켰다.

정부·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고, 비용은 십시일반 자체 조달해 공익성이 높은 조사를 실시한다. 12개 기관이 돌아가며 매달 1회 ‘의뢰자 없는’ 공공조사를 실시해 발표한다. 조사 방법과 결과는 누구든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 이번 ‘자살위기자 예방대응 마이크로 지리정보학’ 조사는 회원사 중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가 맡았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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