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9 (일)

[매경춘추] 피투성이가 된 소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얼마 전 집단폭행으로 피투성이가 된 한 여중생의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가해자들도 어린 소녀들인데 어떻게 이토록 잔인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피해 학생이 겪었을 고통과 상처를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다.

필자가 평검사였던 1990년대까지는 소년범죄에 대하여 지금보다 훨씬 엄정하게 대응했다. 한두 번의 잘못은 기소유예를 해주었지만 같은 잘못이 3~4회 이상 반복되면 가차 없이 구속한 뒤 선도위원의 1대1 선도를 받는다는 조건하에서 용서를 해주곤 했다. 단기간의 구금을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사실 재범 방지의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아직 어린 소년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등의 비난이 있어서 근래에는 어지간하면 청소년들을 구속하지 않는다. 소년은 10번째 범행을 해야 구속할 수 있다는 것이 비밀 아닌 비밀이다.

그런데 문제는 불구속 상태에서 이들을 효과적으로 선도할 대안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제도와 노력은 있었지만 실효성과 충분성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소년들이 수차례 사법 처분을 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반성의 계기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처럼 소년 사법의 개선 논의가 활발해졌다. 아무리 소년이라도 잔혹한 범죄는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 청소년들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악성이 심화하기 전에 미리 예방하고 선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만큼 보다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현재처럼 보호관찰관 1명이 130여 명의 아이들을 담당해서는 제대로 된 지도가 이루어질 수 없다. 아동복지시설같이 아이들을 수용하고 지도할 시설도 형편없이 부족하다. 각 기관이 제각각 제도를 만들고 운영함으로 인한 비효율도 작지 않았다. 앞으로는 유관기관들이 협의체를 구성해서라도 체계적인 정책을 추진해야만 한다. 피해자의 보호 지원 문제가 균형 있게 검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 국민이 느끼는 공분이 제도 개선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 솔직히 다행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씀도 끝으로 드리고 싶다.

[이창재 변호사·전 법무부장관직무대행]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