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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시가 있는 월요일] 머리 없는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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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부처가

머리를 버렸다

원망도

기도도 없다

적막도

기다림도 없다

깨달음도

자유도 없다

세상이



부처이다

- 홍용희 作 <경주 남산>

경주 남산에 가면 머리 없는 불상들이 있다. 머리 없이 앉아 있는 불상들에서 시인은 다른 세계를 본다.

머리를 버렸으니 원망도 기도도 없을 것이고, 기다림도 없을 것이며, 깨달음도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 온 세상이 다 부처인데 '머리'라는 물성(物性)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인은 머리 없는 불상에서 불법의 본 의미를 읽는다.

몇 차례 숨을 멈추고 들여다보게 되는 울림이 있는 시다. 오랜만에 선시 한 편을 제대로 만난 느낌이다.

그렇다. 머리로 무엇을 하고 있다면 그 세상은 여전히 번뇌일 것이다. 머리를 버릴 때 정토(淨土)는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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