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버렸다
원망도
기도도 없다
적막도
기다림도 없다
깨달음도
자유도 없다
세상이
다
부처이다
- 홍용희 作 <경주 남산>
경주 남산에 가면 머리 없는 불상들이 있다. 머리 없이 앉아 있는 불상들에서 시인은 다른 세계를 본다.
머리를 버렸으니 원망도 기도도 없을 것이고, 기다림도 없을 것이며, 깨달음도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 온 세상이 다 부처인데 '머리'라는 물성(物性)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인은 머리 없는 불상에서 불법의 본 의미를 읽는다.
몇 차례 숨을 멈추고 들여다보게 되는 울림이 있는 시다. 오랜만에 선시 한 편을 제대로 만난 느낌이다.
그렇다. 머리로 무엇을 하고 있다면 그 세상은 여전히 번뇌일 것이다. 머리를 버릴 때 정토(淨土)는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