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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김곡의 똑똑똑] 깔때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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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김곡
영화감독


예전에 같은 과 친구를 따라서 한 세미나에 간 적이 있다. 철학 세미나였지만 신학적 색채가 짙은 세미나였다. 그래서인지,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구도는 자아-타자였다.

모든 갈등과 분쟁, 전쟁과 재난까지도 타자를 배려하고 용서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는 듯 말하는 그들, 드디어 내 심지를 건드린 레비나스 인용- 칼을 든 강도도 타자다. 타자를 용서하라. 마침 질문 기회가 주어지자, 이때다. 내가 폭거하길 “이런 식빵! 그러면 자본주의도 타자입니까?!”(이후 유쾌하던 세미나는 고즈넉한 파행으로 R.I.P.(묘비에 주로 쓰는 ‘평화롭게 잠들다’라는 뜻)

모기지론보다 더 무서운 깔때기론이란 게 있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단 하나의 논리로 환원해서 총정리-나라시-피니시하는 논(論)이다. 언젠가 중학교 논리학 시간에 배운 ‘일반화의 오류’? 하나 깔때기론은 일반화의 오류가 아니다. 오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깔때기론은 엄청난 논리들로 무장하고 있는 오류 터미네이터다. 오류와 예외를 발생시킬 수 있는 다층적 시각과 논지들을 단 하나의 앵글과 계열로 찌부러뜨려서, 도대체 틀릴 수가 없는 세모꼴을 만드는 하이퍼로직이기 때문이다. 그 꼭짓점에 무엇을 놓느냐에 따라 깔때기 이름이 달라진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고전적인 깔때기론은 우파-좌파다. 가장 고질적인 깔때기론은 주인-노예. 최근 들어 가장 핫한 깔때기론은 여혐-남혐.

물론 여혐과 남혐은 어디나 있다. 그만큼 고질적인 것도 사실이고. 그런데 바로 이게 깔때기론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즉 깔때기론은 그게 졸라 어디나 있기에 그게 졸라 문제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건 원인과 결과의 혼동이라기보단, 원인과 자리의 혼동이다. 문제의 성격과 그 문제가 발생하는 자리를 혼동하기 때문이고, 문제의 깊이를 문제의 발생 빈도로 대체 측정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 현장엔 네가 있었다. 고로 네가 범인이다. 모든 비극엔 인간이 있다. 고로 인간이 문제다. 모든 죽음은 하늘 밑에서 일어났다. 고로 하늘이 문제다. 뭐 요딴 식이다. 깔때기론자들이 사례 수집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것. 문제 사례들을 많이 모을수록, 당신은 문제를 심도 있게 통찰하는 훌륭한 깔때기론자가 된다(사실은 깔때기의 깊이겠으나). 남자가 취직이 안 되는 건 여자 때문이다. 무수한 사례에서 여자가 잘나가기 때문이다. 여자가 대상화되는 건 남자 때문이다. 무수한 사례에서 남자가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각양 현상들을 최소한의 원리로 환원하려는 형이상학을 트집 잡아볼까 했으나(‘신은 무한’이라는 한마디로부터 책 한 권을 끌어낸 스피노자가 가성비 갑), 형이상학은 추상도가 높다. 반면 진정한 깔때기론은 구체성을 사랑한다. 구체적 사례들만이 깔때기의 골격마디를 잇고 결국 더 크고 뾰족한 깔때기를 이루기 때문이다. 가성비는 개나 줘버려라. 단일 하이퍼로직을 구축하는 길이라면, 깔때기론자들은 사례의 태산을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 깔때기론자는 오늘도 사례를 찾아 세계를 헤맨다. 깔때기론은 사례 페티시즘이다. 그는 현상 폭식증이기도 하다. 각양각색의 현상을 한입에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깔때기 꼭짓점이 그 항문이다. 똥색은 모노크롬이다. 여혐론, 남혐론은 똥은 아니어도 똥색이다.

그러나 깔때기론의 가장 나쁜 점은 그 폭력성에 있질 않다. 깔때기론 말고도 폭력을 부추기는 건 더 많으며, 깔때기론은 폭력을 합리화하는 논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깔때기론이 나쁜 건 그 나태함과 빈약함이다. 오죽 게으르면 로직이 하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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