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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 (월)

기재부는 왜 오리휴업보상제 예산 22억 삭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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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계열사 이해 대변” 비판에 기재부 “실효성 없어서”


“농림식품부·문화부 장관 다 찬성했는데, 기획재정부가 몽니를 부려 결국 빠지게 됐다. 기재부가 오리 계열사 편을 든다. 평창올림픽이 당장 내년 2월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AI가 또 터지면 그 피해는 기재부가 책임질 것인가.”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휴업보상제. 간단히 말해, AI바이러스가 창궐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의 가금류 밀집 사육지역에 한시적으로 닭이나 오리 사육을 중단시키고 대신 농가에 보상금을 지급하자는 가축사육 제한조치다. AI 창궐의 전형적인 패턴은 11월부터 2월 사이의 겨울철에 처음 발생하는 것이다. 주로 동남아 지역으로부터 날아온 오리과 철새로부터 감염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발생지역은 충북과 전남·북의 이른바 ‘서해안 벨트’에 집중되고 있다. ‘오리’에 휴업보상제를 실시하자는 이유는 오리가 주된 감염경로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각 부처 장관들의 휴업보상제 실시에 대한 반응은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예산규모는 국비 22억원이었다. 나라에서 절반을 대고, 지방비에서 절반을 대는 형식으로 전체 예산은 총 44억원이면 가능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예산심의를 총괄하는 기재부 심의에서 이 예산은 최종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김 의원에 따르면 아직 실시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 지출항목으로 잡혀 있는 축산발전기금을 활용하면 된다. 기금예산의 20%는 해당 부처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데, 이 경우도 기재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김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11월부터 2월까지 딱 두 번 출하할 만큼만 보상하면 된다. 10월에만 결정돼도 할 수 있다. 기재부가 전향적으로 판단해 동의해주면 농림부가 그 예산을 쓸 수 있다.”

오리휴업보상제에 제일 적극적인 곳은 충청북도다. 지난해와 올해 AI로 홍역을 치렀다. 이시종 충북 도지사가 특히 적극적이다. “충청북도의 경우 지난해 살처분과 방역비용을 합쳐 330억원이 들었다. 총 85개 농가에서 AI가 발생했는데 그 중 63개 농가가 오리였다. 계산해보니 14억원 정도면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나온다.” 충북도 축산과 관계자의 말이다. 충북도는 추경에 자체 예산을 편성하는 방식으로 이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충북도는 자체 예산으로 휴업보상제 실시

기재부가 오리 계열사 편이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일단 오리 축산산업의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양계산업, 그러니까 닭과 관련한 산업은 산란, 육계, 토종닭 등으로 분야가 세분화되어 있다. 반면 오리는 거의 육용오리 하나다. 한때 토종오리 분야가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육용오리 산업의 95%는 계열화되어 있다.

계열화란 이런 뜻이다. 농민들이 100마리의 오리를 키운다면 사조화인푸드, 하림, 주원산오리, 삼호, 푸드모션 등 약 12~13개 종오리 회사로부터 공급받아 키우는 오리들이 95마리라는 뜻이다. 농민들은 이들 회사로부터 병아리와 사료를 공급받아 키운다. 입식에서 출하, 즉 데리고 와서 키워 다시 내다파는 기간이 닭에 비해 길다. 오리의 경우 사육농가와 계열사의 관계가 수직적이다. 다시 말해 계열사가 갑, 사육농가가 을이라는 뜻이다. “오리의 경우 병아리·사료뿐 아니라 판로까지 계열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니 밉보이면 곤란할 수밖에 없다.” 충북 진천의 오리사육 농장주 ㄱ씨의 말이다. “계열사는 사기업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니 농가에 매몰차다. 심지어는 상대평가라고 해서 양육을 하는 데 1등부터 사육 순위를 매긴다. 사료를 제때 먹여 빨리 출하하는 쪽에 대금을 빨리 지급하는 것이다. 병아리가 논란이 되는 건, 건강한 병아리를 받으면 사료는 조금 먹어도 잘 크는데, 나이든 종오리는 병아리가 약할 수밖에 없다. 마음에 안 드는 농가에는 그런 병아리를 준다.”

사육농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오리협동조합은 없다. 결성 시도는 있었다. 지난 2015년 ㄱ씨와 전국 오리농가 130곳이 어렵게 뜻을 뭉쳤다. 하지만 계열사의 벽은 결국 넘을 수 없었다. “협동조합이 못마땅한 계열사가 오리를 안 주니까, 동참했던 사람들도 백기 들고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앞서 ㄱ씨의 말이다. 업계 관계자 ㄴ씨는 이렇게 말한다. “오리협회가 있으니 오리 키우는 사람들 모임 같지만, 실제 협회가 대변하는 곳은 오리 계열사들이다.”

정말 그럴까. “큰 회사의 갑질은 아니고….” 김병은 오리협회장의 말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종오리는 병아리를 계속 생산한다. 알은 계속 나오고 부화가 순차적으로 이뤄지니 (휴업보상제가 실시되면) 병아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 결국 병아리를 없애라는 것 아니냐. 병아리 값이 현제 1600원인데 휴업보상제를 실시해 500원 보상하면 주객이 전도된다. 결국 그 숙제는 계열사의 몫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어 김 회장은 “풍선효과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병아리들이 휴지기를 안 하는, 이른바 안전한 데로 가면 그 지역은 다시 밀집사육을 할 수밖에 없다. 휴업보상제를 실시하더라도 계열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책이 필요하다.”

흥미로운 자료를 김 의원으로부터 입수했다. 농림식품부 방역총괄과가 지난 6월 작성한 자료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AI 발생지역에서 닭과 오리 계열사에 직접 지급한 살처분 보상금 중 84%가 오리 계열사에 집중됐다. 농민을 거치지 않고 AI 살처분 보상금을 직접 챙기는 관행이 오리 계열사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휴업보상제를 실시하는 경우, 계열사들은 병아리와 사료 값을 처음부터 받을 수 없다. 차라리 AI가 발병해 살처분 보상금을 받는 것이 계열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 이득이라는 수지타산이 가능하다. 김 의원은 “그게 계열사들이 휴업보상제에 적극적이지 않은 내밀한 이유”라고 말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10월부터 내년 2월까지 AI 발생 여부와 상관없이 ‘심각’ 단계에 준해 방역을 시행하겠다.” 9월 7일 정부세종청사. 사전 브리핑에 나선 허태웅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의 말이다.

이날 농림식품부의 ‘평창올림픽 AI 대책’에 ‘휴업보상제’는 빠졌다. 허 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부 예산은 확보되지 않았지만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시행할 경우 중앙정부가 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예산당국과 협의해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서 예산당국은? 다시 기재부다.

■AI 창궐 언제까지 밀집사육 탓만 할 건가

“22억원으로 됐으면 진작 정부가 했다. 휴지기제는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근본대책이 아니다. 돈을 줘서 쉬게 한들 AI가 안 온다는 보장이 없다. 모든 관련자들이 경제행위를 영위하는 가운데 안 오는 것, 다시 말해 이 경우 밀집사육을 옮기는 것이 근본대책이다.” 9월 7일 <주간경향>과 통화한 기재부 핵심 관계자의 말이다. 간단히 말해 휴업보상제는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는 것이다. ‘몽니’라면 여전히 ‘몽니’다. 김현권 의원은 “교수·전문가, 현장 생산자들이 한목소리로 밀집사육 문제를 당장 해결하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고, 실제 지방 조례가 강화되어 현실적으로 신규축사를 지을 곳도 우리나라에는 없다”며 “이전 비용을 정부가 감당할 것도 아니고 관련 제도도 마련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터지면 밀집사육 때문이라고 축산농가만 때릴 건가”라고 말했다. 그는 “엄청난 살처분에 대한 오리 계열사들의 도덕적 불감증에 빌미를 주고 올림픽에서 국가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을 방치하면서 또다시 농가들에 그 책임을 떠넘기려는 안일한 태도가 반복되어선 안된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예산당국의 아집과 탁상공론이 국가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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