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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에서 들어오는 직접투자가 3분기 들어 뚝 끊겼다. 아직 9월 한달이 남았지만, 7월과 8월 두달 동안 EU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억 달러(약 200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그나마 이 2억 달러 중 절반 가량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이라 실제 투자로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8월 말까지 EU에서 들어온 신고기준 FDI는 약 24억 달러(약 2조7084억원)다. 상반기까지 EU에서 들어온 신고기준 FDI는 22억 달러(약 2조4796억원)였다. 7월과 8월 두달 동안 겨우 2억 달러가 한국에 투자 된 셈이다.
EU의 한국 직접투자는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작년 상반기에는 42억1000만 달러가 투자됐는데, 올해는 작년에 비해 47.3%가 감소했다. 산업부는 “브렉시트 협상의 불확실성이 지속하고 있고, 유로존 양적완화 축소 논의 등으로 유럽 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작년에는 1억 달러 이상 대형 인수합병(M&A)을 위한 투자가 있었는데, 올해는 기업 이슈가 없어 직접투자 성과가 더 저조하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유럽의 경우 매년 3분기(7~9월)는 여름 휴가철이라 일반적으로 다른 시기보다 FDI가 적다. 또 기업들이 당해 년도에 계획했지만 진행하지 못했던 투자를 연말에 한꺼번에 해 3분기에는 기업들의 투자가 적게 이뤄진다. 하지만 작년(11억1000만 달러)과 비교해도 올해 3분기 직접투자는 크게 적은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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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들어온 2억 달러도 목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투자 성과를 거뒀다며 마냥 즐거워 할 수만은 없는 돈이다. 절반 가량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배상금이기 때문이다.
산업부에 따르면 옥시레킷벤키저는 지난달 말쯤 약 9000만 달러(약 1014억원)의 자금을 한국에 직접 투자한다고 신고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투자금 사용 목적으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 지급이라고 밝혔다. 이는 올해 전체 EU FDI의 약 4% 수준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EU FDI가 주춤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금이 한꺼번에 들어와 기뻐했는데, 투자 사유를 보고는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면서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보상금이 통계상으로는 투자 성과로 잡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인체에 해로운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누적 사망자 수는 약 123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옥시레킷벤키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한 정부의 3차 피해조사에서 ‘1·2 단계’ 판정을 받은 피해자에 대한 최종 배상안을 확정하고 배상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1단계는 ‘피해가 거의 확실함’, 2단계는 ‘피해 가능성이 높음’이다.
옥시레킷벤키저는 피해자의 과거 치료비와 향후 치료비, 일실수입(다치거나 사망하지 않았을 경우 일을 해 벌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입)을 배상할 방침이다. 또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최고 3억5000만원(사망시) 지급하기로 했다. 영유아·어린이의 사망·중상 사례의 경우 배상금을 위자료 5억5000만원 포함해 총액 기준 10억원으로 일괄 책정했다.
한편 한국의 정치·정책적 상황이 EU의 투자 심리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조기 대선 이후 한국은 정부 교체기를 보내고 있고 외국인들이 한국의 산업 및 경제 관련 정책이 모두 결정될 때까지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탈원전 등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 우려도 외국인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이유로 꼽힌다. 한국에 생산 설비를 지으려 해도 장기적으로 전기요금 부담이 가중될 것을 우려해 투자를 망설인다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FDI를 늘리기 위해 외국 기업인들과의 만남을 추진하고 있는데, 외국인들이 전기요금 전망에 대한 문의를 많이 한다”면서 “에너지 정책이 빨리 안정을 찾아 전력 수급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feel@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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