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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강신우의 닥치Go]“처음엔 부끄러웠지”…실버택배 현장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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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전국 1066개 시니어일자리 제공

거점별 하루 물량 500여 상자, 4~5시간 근무

전병택씨 “내 나이에도 일할 수 있어 행복”

월급 40만원, 아내와 외식·손주들 용돈으로

이데일리

[이데일리 강신우 기자] “규격협회라고 알아? 울산에 있는 택배회사에서 근무할 때 거기서 물류 코스트를 배우고 했지. 당시에는 물류를 잘 알았지. 지금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 복 받았지 나는.”

6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응암동의 한 대단지 아파트. 택배 상자를 든 전병택(67·서울 응암동) 씨는 30여 년 전 모 택배회사 신입사원 때의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규격협회는 현재 한국표준협회로 이름이 바꼈다. 표준협회는 산업표준화와 품질경영에 관한 기업교육 등을 담당하는 곳이다. 전 씨는 퇴직 후 3년 전부터 실버택배 일을 하고 있다.

“택배 일은 무조건 ‘을’이야. 처음에는 부끄럽기도 했는데 지금은 마냥 행복하기만 해. 내 나이에도 일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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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물량 평균 500여 상자. 전 씨와 함께 근무하는 어르신은 모두 5명. 이들은 하루 4~5시간을 월수금, 화목토로 조를 나눠 교대로 근무한다. 최저 시급을 적용해서 한 달 월급은 40만~50만원. “209동은 오늘 물량이 많네~ 복 받았네 복 받았어~” “야 큰일 났다야, 이런 복은 안 받아도 되는데…” 어르신들은 각 동별로 업무를 분담한다. 이날은 209동에 물류가 몰렸다. 짐을 나르면서도(하차작업) 농을 주고받는 어르신들은 힘든 기색이 없다.


전 씨는 자녀 둘 다 분가하고 배우자와 단둘이 산다. 월급으로는 아내와 외식을 하거나 손주들 용돈으로 쓴다고 했다. 그는 “친구가 됐지 이제. 집에 가만히 있으면 뭐해. 이런 일이라도 하니 사회 유대관계도 맺고 좋은 거지. 애사가 있을 때 함께하고 저번 달엔 장례식에도 같이 가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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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씨가 택배 일을 하게 된 것은 CJ대한통운이 2013년 보건복지부와 시니어일자리 창출 업무협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다. 이러한 일자리가 전국 각지 140여개 거점에 1066개나 된다.

오후 3시반. 분류 작업을 끝낸 전 씨가 이제 집집이 배달에 나섰다. 택배 일을 한 지 3년쯤 되니 노하우도 쌓였다. 클립이 달린 나무판에 배송 확인용지를 바로바로 정리하고 작은 상자는 큰 박스에 한 데 모아 담았다. 두 집이 붙어 있으면 벨을 동시에 눌렀다. 인기척이 있으면 택배를 전달한다. “안녕하세요~ 택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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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 시엔 배송지 주소 옆에 ‘경’이라고 쓴다. 경비실에 가져다 놓을 택배라는 의미다. 택배상자에 ‘경비실에 맡겨주세요’라는 문구가 있을 땐 아파트 한 동의 택배를 모두 돌린 후 마지막에 맡기고 인수자에게 문자를 한다. 문자 보내는 데는 단 3초. 휴대폰에 자주 사용하는 문구를 저장해놓고 초성만 쓰면 자동으로 해당 문구가 뜨게 해놨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손주들 또래만한 한 아이가 택배를 받으러 나오며 인사하자 주머니에서 1000원을 꺼내 “용돈이다”며 쥐여줬다. 좋아서 거실로 뛰어들어가면 또 다른 아이가 나온다. “안녕하세요~” 또 배꼽 인사를 한다. 그렇게 2000원이 나갔다. 전 씨는 “공손히 인사를 잘하니까 애들이 예쁘잖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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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2층부터 층층이 내려와 1층까지 택배를 다 전달하고 나자 1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번엔 좀 더 거리가 먼 311동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때는 전동카트를 이용한다. CJ대한통운은 국토부의 녹색물류전환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보조금을 지원받아 총 100대의 전동장비를 마련했다. 짐칸엔 약 40여 개의 물품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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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씨가 떠나기 전에 물었다. “힘들진 않으세요?” 그러자 이렇게 말했다. “힘들긴 집에 가만히 있는 거 보다야 낫지. 김장철 절임배추만 아니면 괜찮아(웃음)” 그가 쓴 모자엔 ‘배달의 기수 6070’이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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