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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김광석 죽음에 의문 던지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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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이상호, 영화 <김광석> 제작해 8월30일 개봉

의혹 변사사건 공소시효 넘겨 조사할 법 호소


한겨레21

8월3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김광석> 언론 시사회에 이상호 기자가 참석했다. 네이버 영화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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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광석>이 8월30일 개봉한다. 세월호 참사 관련 첫 번째 다큐멘터리영화이자 블랙리스트 논란의 중심에 섰던 영화 <다이빙벨>을 연출한 이상호 기자의 두 번째 개봉작이다.

이상호 기자는 1996년 발생한 가수 김광석 변사 사건을 낙종한 부끄러운 기사로 기억하고 있다. 기자들은 무슨 사건이 터졌는지 담당 경찰서와 주변 병원 영안실 등을 꼬박꼬박 챙겨야 했다. 그는 서울 마포경찰서 출입기자 시절인 그해 1월6일 “너무 추워서”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을 챙기지 않았다. SBS 기자가 먼저 현장에 갔고, 그날 새벽 SBS 뉴스에 ‘김광석 변사체 발견’ 보도가 나갔다. 이상호 기자는 엄청 깨졌고, 그날부터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빈소를 지켰다. 이후 김광석 변사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취재해왔다. “수사에는 공소시효가 있어도 보도에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말해온 이상호 기자는 이 사건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김대중 정부 초기 서울지검 강력부와 공조해 재수사 관련 일정이 잡힐 뻔했지만, 검찰이 피의자를 물고문해 숨진 사건이 터져 수사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진실이 밝혀지지 못한 적도 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어젠다 키퍼’

이상호 기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20년이 넘어서야 영화 <김광석>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타살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특정인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영화관을 나설 가능성이 높다. 물론 그가 특정한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 왜곡된 사실을 나열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는 사건 관련 사람들의 인터뷰와 취재를 통해 영화를 본 이들이 합리적 의심을 하도록 정보를 제공해준 것뿐이다.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당사자가 고소해주길 바란다. 공소시효가 지난 이상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믿는 것이다.

JTBC 보도 담당 사장 손석희는 “어젠다 세팅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어젠다 키핑이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의제 선점도 중요하지만 의제를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을 알고 일관되게 실천하는 언론인은 이상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는 나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특종은 처음 쓴 기사가 아니라 내가 마지막 쓴 기사여야만 해요.” 속보 경쟁과 가십성 기사가 난무하는 현재 언론 풍토에서 귀감이 되는 얘기다.

이상호 기자는 그동안 고소·고발을 100여 번 당했다. 그때마다 경찰·검찰 조사를 받고 법정에 섰다. 강단 있는 언론인 이상호는 사실 내가 아는 남자들 중 가장 눈물이 많다. 방송이나 취재 중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흘린다. 초창기 시절 운영자금이 부족해 직원들을 마음껏 먹이지 못한다면서 “직원들이 밥 먹을 때 내 눈치를 봐”라며 통곡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기사를 쓸 땐 누구보다 용감하다. “살기 위해 기사를 써본 적 없다”고 말하는 그는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방송국 PD에게 뇌물을 준 사건을 기사화했다. 당시 내로라하는 방송국 PD 등 40여 명이 구속됐다. 업계에선 ‘이상호를 손보겠다’며 ‘조폭을 풀겠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전두환이나 삼성 같은 거대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다.

“소송 감내하고 쓴 기사 기억에 남는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이상호 기자 어때? 공명심이 강하거나 소영웅주의자 아냐?”라고. 설령 그렇다 한들 이상호 같은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그가 하는 일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거는 것이다. 왜 그런 삶을 선택했는지 궁금해 인터뷰에서 집요하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제 기억에 남는 것은 대부분 소송에 걸린 기사들이에요. 엄청나게 이름을 날린 특종도 아니고, 여하튼 소송을 감내하고서라도 꼭 쓰고 싶었던, 그래서 어렵게 방송에 나간 기사들이 기억에 남거든요. 본질적으로 무거운 짐을 좋아했다기보다 그걸 보고 기뻐할 사람들을 생각했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착한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 뿌리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런 그에게 선배 주철환은 ‘고뇌하는 돈키호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각자 자기 마음속에 ‘우리 시대의 기자’가 있겠지만, 내게 그 사람은 단연 이상호다.

<김광석>을 만든 이상호 기자는 호소한다. “김광석씨가 유명 가수여서 취재한 것만은 아니다. 한 해 평균 3만 명에 달하는 변사자가 이유도 밝혀지지 않은 채 죽음을 맞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공권력의 변사자 대응은 여전히 미비하다. 대부분 자살로 처리된다. 김광석을 포함해 명백한 의혹이 있는 변사 사건들은 살인죄의 공소시효와 무관하게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김광석법’ 제정이 절실하다”. 이번에는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지승호 인터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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