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 가시고 가을맞이 벌레소리 들릴 때
선조들 ‘비 내리면 알곡 덜 여문다’ 걱정
처서음식엔 추어탕ㆍ호박ㆍ감자 칼국수 등
추석 앞두고 벌초 계획 세우는 것도 좋을듯
[헤럴드경제=조현아 기자] 23일은 처서(處暑)다. 처서는 24절기 중 14번째 절기로, 입추와 백로 사이에 있다. ‘더위가 물러난다’는 뜻을 지닌 절기답게 해마다 처서인 8월 23일이 되면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밤낮으로 울던 매미 소리가 잦아진 자리에 귀뚜라미가 운치 있게 울어대며 ‘여름이 끝나고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다’고 속삭인다. 그래서 더위의 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챙기는 절기이기도 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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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비’는 반갑지 않은 손님= 처서는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절기다. 입추 무렵부터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던 벼들이 알곡으로 변신을 시작하는 때로, 한낮 쨍한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영양분이 가득차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쌀이 된다. 그래서 예부터 처서 날씨를 보고 한 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가늠했다.
올 처서엔 비가 내리고 있다. 기상청은 23일 전국 곳곳에 비와 소나기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처서에 오는 비를 ‘처서비’라고 부르는데, 반갑지 않은 손님으로 여긴다. 여름내 정성들여 가꾼 곡식이 결실을 앞두고 충분한 햇빛과 바람으로 단단히 여물어야 하는데 비가 오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처서인 23일 수도권과 중부지방에 비가 내리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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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경남 통영에서는 ‘입추에 비 오면 천 석을 얻고 처서에 비 오면 십 리에 천 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 오면 십 리에 백 석을 감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입추에 내리는 비는 농사에 유익하고 처서와 백로에 내리는 비는 햇빛양이 줄어 곡식이 익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또 전북 부안과 청산에서도 ‘처서 날 비가 오면 큰애기들이 울고 간다’라고 하는데,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대추가 주요 작물인 이 지역에서 열매가 익는 처서 전후로 비가 내리면 제대로 익지 않아 결혼을 앞둔 큰애기(성인여성)들의 혼수 장만에 걱정한다는 뜻이다.
▶관련 얘기도 많아요= 더위가 가고 가을이 오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는 처서에는 다른 절기에 비해 관련 이야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는 찬바람이 불어 모기 등 해충의 활동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재밌게 한 표현이다.
또 북한 속담 ‘처서에 장벼 패듯’은 ‘무엇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을 견주어 이를 때 쓰며, 처서 무렵 벼가 잘 익어간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며 ‘처서 밑에는 까마귀 대가리가 벗어진다’는 ‘처서 무렵의 마지막 더위는 까마귀의 대가리가 타서 벗겨질 만큼 매우 심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밖에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란 말도 있다.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뜻으로, 추수를 앞둔 처서 즈음 농부는 한가롭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는 말은 처서비가 농사에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다.
▶절기는 음력이 기준이다?=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인 절기는 흔히 달의 차고 기움을 따라 날짜를 세는 음력으로 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절기는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하는 양력으로 정해진다. 태양이 1년간 지나가는 길인 황도(黃道)를 15도 움직일 때마다 절기 하나가 찾아온다.
[사진=네이버 지식백과 캡처] |
▶점심에 애호박칼국수 어때요?= 그렇다면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를 맞아 선조들의 처서음식을 통해 더위에 지친 몸을 보호하고 환절기에 면역력도 높여보는 건 어떨까?
‘가을추어탕’이란 말이 있듯 가을에 살이 통통히 오른 미꾸라지를 끓여 드셨던 옛어른들처럼 고단백 음식의 대표주자인 추어탕은 환절기에 먹으면 기력 보충에 매우 좋다. ‘가을 추(秋)’가 아닌 ‘미꾸라지 추(鰍)’를 써서 추어탕이라 하지만 이름부터 계절과 묘하게 잘 맞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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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어탕이 부담스럽다면 애호박 칼국수은 어떨까? 예부터 애호박 칼국수는 처서에 즐겨 먹은 음식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을 대비해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려는 의미로 보인다.
이 밖에 여름부터 가을까지 맛있는 감자도 처서에 먹기 좋은 음식이다. 비타민 B와 C가 풍부해 환절기 면역력을 높이고 알레르기 개선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칼륨이 풍부해 일교차가 심해지는 요즘 혈압 조절에 도움이 된다.
또 대추차도 좋다. 선조들도 찬음식을 즐긴 여름을 보내며 따뜻한 기운의 대추를 끓여 차로 마셨다. 대추차는 환절기 비염 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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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이후엔 햇볕의 강렬함도 줄어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산소 벌초하기에 좋은 때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또 비가 그치면 옛어른들처럼 여름장마에 눅눅해진 옷과 책 등을 꺼내 잠시나마 햇빛샤워해보는 건 어떨까?
jo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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