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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수퍼맘 강요받는 사회 “육아하는 ‘엄마’ 다룬 소설 왜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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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육아의 여왕’ 김주연 작가 인터뷰

조선일보

/박하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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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사회는 엄마들에게 수퍼맘이 되기를 강요한다. 일과 육아를 ‘그냥’ 병행할 수 없게 만든다. 직장에서는 무엇이든 척척 해내면서도 집안일 때문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지 않기를 원한다. 집에서는 육아는 물론이고,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를 거쳐가는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잘 시간조차 변변히 없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드라마화 계약에 성공한 ‘육아의 여왕’이 관심을 받았던 이유다. 지난 2015년 출간돼 소위 ‘대박’이 나지는 않았지만, 여느 베스트셀러만큼 많은 리뷰와 생생한 주부들의 공감 스토리가 블로그에 가득했다. ‘수퍼맘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엄마들의 공감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쓴 김주연 작가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하는 일문일답.

- ‘육아의 여왕’은 어떤 작품인가.

“출간된 지 2년 된 소설이다. 말로는 ‘엄마는 세상 가장 위대한 존재’라며 추켜세우지만, 정작 밖에 나가면 엄마는 늘 뒤로 밀려나는 신세 아닌가. 엄마들은 언제까지 드라마 속 완벽한 여배우들을 보며 대리만족만 해야 할까. 육아와 글쓰기를 병행하면서, ‘육아하는 엄마가 주인공인 소설은 왜 없을까’ 하는 고민에 쓰게 된 책이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억울하기도 하고 답답했다.”

- 결정적인 계기 같은 것은 없었나.

“육아하는 엄마에 대한 소설을 구상하던 중, 인터넷에서 산후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엄마의 기사를 봤다. 기사에 달린 댓글이 예상보다 매우 폭력적이었다. 물론 극단적 선택을 한 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려 하거나 가여운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어느 누가 하나뿐인 목숨을 함부로 끊고 싶었겠나. 그런데 엄마라는 존재에겐 ‘어떻게 엄마로서 그럴 수 있느냐’ 라는 비난이 너무도 당연하더라.

그때부터, 여자에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좀 더 기다려주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적으로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쓰게 됐다.”

- 소설 속에는 생생하게 육아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경험담인가.

“나는 육아의 격동기를 보내며 이 소설을 썼다. 그러니 아무래도 경험담들이 알게 모르게 녹아들었을 것이라 본다. 이 책을 쓸 당시에는 아이가 어려서, 아이를 재워놓고 육아용품 구매를 위해 인터넷 쇼핑 삼매경에 빠지곤 했다. 엄마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정보도 얻고, 아이 반찬을 만들기 위해 유명 블로거의 포스팅을 참조하기도 했다. 나는 또 놀이터나 어린이집, 소아과 등 주변 사람들 이야기에 늘 예민하게 오감을 열어두는 편이다.”
조선일보

/박하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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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서 워킹맘은 고충이 크다.

“말이 필요없다. 어떻게 정해진 시간 안에 그 많은 일들을 해내는지,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올해 초 기사로 나왔던, 세 자녀를 둔 공무원 워킹맘의 사망 사건을 기억하는가. 난 그분을 알지는 못하지만, 일요일까지 나와 근무를 하면서도 세 아이를 챙기느라 정작 본인 건강은 뒷전이었을 모습이 그려져 안타까웠다.
숭고한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숨죽인 삶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여자들은 엄마가 되면서 포기 당해야만 하는 많은 것이 있는데, 그것 역시 당연시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도 사람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어디 있는가.”

- 자녀 양육의 원칙이 있나.

“나는 최소한 아이에게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라든지 ‘다 너 잘 되라고 그런 거야’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또 자식을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로 생각하거나 노후를 위한 보험처럼 여기고 싶지는 않다. 내 아들도 이제 여덟 살인데 이미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고 생각될 때가 종종 있다.

아이를 정말 사랑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만큼 나 자신을 지키면서 살고 싶기도 하다. 아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엄마의 삶을 즐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도 제 인생을 스스로 설계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 소설에서 여성이 어머니가 되는 과정에서 자기애와 모성애가 충돌하는 과정을 생생히 그려냈는데.

“여자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기가 ‘첫 아이 낳고 일 년’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무척 공감한다. 오늘날의 엄마들은 이전 세대와 다르게 폭넓은 경험을 많이 한다.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경쟁을 한다. 자아실현을 위해 나 하나만 관리하면 됐던 삶과, 엄마로서 책임질 아이가 있는 삶은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이다.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이기에 겪게 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이자 충격이다. 거기서 오는 혼란과 두려움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 워킹맘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워킹맘들은 마음 한 편에 늘 죄책감과 고민을 가지고 산다. 아이가 아파도, 밥을 안 먹어도, 기저귀를 늦게 떼거나, 말이 더뎌도 모든 게 엄마인 내 책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나 역시 워킹맘으로서, 그런 고민들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민한다는 것은 곧 노력한다는 뜻이고, 좋은 엄마임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런 선량한 모성이 내 아이를 자라게 하는 토대가 될 거라 믿는다.”

[신승민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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