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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최저임금 범위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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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란

현행 최저임금법 시행규칙상

기본급에 정액·정률 수당까지 포함

초과급여 수당·복리후생비는 미포함

경영계 “상여금도 포함해야” 주장

노동계 “인상 무력화 꼼수” 반발



한겨레

그래픽_김승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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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모두 범법자로 몰려는 것이냐?”(경영계)

“최저임금 인상 결정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냐?”(노동계)

내년 최저임금 16.4% 인상 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경영계와 노동계의 의견 대립이 거세다. 쟁점은 ‘최저임금 산입 범위’다.

6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와 노동계 의견을 종합하면, 경영계는 현행 법령상 최저임금으로 인정받는 범위가 너무 좁아 내년부터는 실제로는 16.4%보다 훨씬 큰 폭의 임금 상승 부담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노동계는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을 왜곡해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를 무력화하려는 주장이라고 반발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총과 중기중앙회 등 경제단체는 현행 최저임금제도의 개편에 나설 움직임이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가 다른 나라보다 너무 좁아 기업이 체감하는 임금 수준과 괴리가 크다는 게 경영계 주장의 핵심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뒤 30여년 동안 산정 기준이 한번도 바뀌지 않아 산업현장과 임금체계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실제 기업이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고도 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으로 인정하는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매달 정기·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기본급과 직무·직책수당, 면허수당 같은 직무 관련 고정수당만 인정된다. 예를 들면 월 300만원을 받는 ㄱ씨가 기본급과 고정수당 등으로 150만원을, 상여금이나 추가 근무 등 특별 또는 초과 급여로 150만원을 받는다면 ㄱ씨는 150만원만 최저임금으로 인정받아 시급(월 209시간 근로 기준)으로 7177원을 받는 셈이다. 해당 기업은 ㄱ씨에게 내년에는 최저임금 기준 7530원에 맞춰 기본급이나 고정수당을 올려줘야만 한다. 상여금이나 휴일수당 등 초과근로에 대한 수당, 가족수당 등 일률적이지 않는 수당, 숙식비나 교통비 같은 복리후생비 등이 최저임금으로 인정되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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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계 주장대로 산입 범위를 넓히면 기업의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부담은 대폭 줄어든다. 올해 정액임금 수준이 최저임금에 머무는 중소기업이더라도 상여금 등 특별급여까지 반영하면 월급이 154만951원(월 209시간 기준)으로, 내년 최저임금 월환산액 157만3995원에 거의 다다른다. 최저임금의 법적 산정 기준을 경영계 요구대로 바꾸면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가 아닌 2.1%로 떨어지는 셈이다. 물론 통계상의 추정치일 뿐이지만 최저임금에 대한 괴리감이 큰 기업의 사업주라면 솔깃해할 상상이다. 경총 관계자는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대법원의 2013년 판례에 따른 통상임금의 기준만큼 확대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정기적, 고정적, 일률적 지급’이라는 기준을 충족한 금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이 기준을 최저임금에 적용하면 상여금과 연말 성과급 등이 최저임금으로 산정될 수 있다.

그러나 경영계의 이런 요구는 노동계 반발에 곧바로 부닥친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경영계가 통상임금을 둘러싼 법정 분쟁에서는 상여금 등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최저임금에는 넣자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이제 와서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넓히자는 것은 최저임금 인상 결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꼼수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대한 혼선은 경영계가 자초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기업들이 정액임금의 인상 부담 없이 장시간 근로를 유도하려고 여러가지 명목의 수당 등으로 임금체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바람에 최저임금 인정 범위가 상대적으로 줄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통상임금은 야근과 휴일근로 등에 대한 법정수당을 산출하기 위한 도구적 개념이지 임금 그 자체로의 의미가 없다”며 “저임금 노동자 보호와 최소한의 생활안정을 위해 국가가 강제로 지급의무를 지우는 최저임금을 통상임금과 맞추는 것은 법 취지와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정부의 각종 임금통계가 논란을 키우는 측면도 있다. 정부는 임금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최저임금 구성 항목은 대체로 ‘정액급여’와 같고, 상여금과 성과급은 ‘특별급여’, 나머지 각종 수당은 ‘초과급여’로 분류한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전사업장의 상용직 월평균 임금총액 가운데 정액급여의 비중은 77.5%이다. 5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82.4%이다. 즉 기업이 지급하는 임금 가운데 전사업장 평균으로는 22.5%, 중소기업은 17.6%만큼은 최저임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 경영계에서는 이 가운데 상여금 등이 포함된 특별급여만이라도 최저임금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하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의 추가 부담은 대폭 줄어든다. 특히 전체 임금에서 상여금이나 성과급의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그렇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좀더 정확한 기업 임금실태와 최저임금 시행 여건에 대해 외부 용역조사를 실시해, 이 결과를 토대로 최저임금 산정 기준의 개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의 산정 범위를 둘러싼 논란과 갈등을 해소해 최저임금제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이 과정에서 소모적 논쟁을 줄이려면 우선 준거지표에 대한 정의부터 합의할 필요가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부의 고용실태 조사 자료를 분석해보면 임금소득 하위 20% 계층은 대부분 임시·일용직들로 상여금이나 수당이 거의 없다. 따라서 통상임금과 최저임금을 일치시키더라도 큰 무리가 없다. 저임금 노동의 해소라는 목적에만 부합한다면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조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박순빈 선임기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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