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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딴 남자 생겼냐” 데이트 폭력, 40대 여성 5일째 의식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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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30대 남성, 주먹으로 때려

의식 잃은 뒤에야 놀라 119 신고

머리에 중상 … 스스로 호흡 못해

연인의 폭력에 연 46명 숨지지만

관련 처벌법은 국회 계류 상태

경기도 남양주시에 사는 A씨(46·여)는 31일 현재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5일째다. 의식도 없고 혼자 숨을 쉬지 못해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다.

그가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은 남자친구 때문이다. “집으로 오라”는 남자친구 B씨(38)의 전화를 받은 A씨는 지난달 27일 남양주시 별내면에 있는 B씨의 집으로 갔다. B씨는 다짜고짜 “다른 남자가 생긴 것 아니냐?” “바람피웠지?”라며 A씨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아니다”고 부인하자 주먹이 날아왔다. B씨의 폭력은 A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에야 끝났다. 놀란 B씨는 119구급대에 직접 신고를 했다. A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머리에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경찰 조사 결과 회사원인 B씨는 우연한 기회에 A씨를 알게 돼 5년간 사귀어 왔다. 최근 A씨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한 B씨는 이날 추궁하는 과정에서 주먹을 휘두르다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남양주경찰서는 B씨를 상해 혐의로 구속했다. B씨는 경찰에서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여자친구를 때렸다”며 혐의를 인정했다고 한다. 남양주경찰서 관계자는 “연인 관계였던 B씨의 폭행으로 A씨가 중태인 만큼 데이트 폭력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전에도 데이트 폭력을 당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연인 간 데이트 폭력 피해는 최근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신당동에선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길거리에서 전 여자친구를 무차별 폭행하는 폐쇄회로TV(CCTV) 영상이 공개돼 공분을 샀다. 이 남성은 “다시는 보지 말자”고 이별을 고한 전 여자친구를 찾아가 폭행해 치아 5개를 부러뜨리고 인근에 세워둔 1t 트럭을 몰고 현장으로 돌진하기도 했다. 이 남성은 특수폭행과 음주운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광주광역시에선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해 폭력을 휘두르고 모텔에 감금한 20대 남성이 최근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연인 간 폭력사건으로 지난해에만 8367명(449명 구속)이 입건됐다. 연인의 폭력으로 숨진 사람도 2011년부터 2015년까지 233명에 이르는 등 연간 46명이 데이트 폭력으로 희생됐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데이트 폭력 실태를 조사한 것을 보면 응답자(1017명)의 61.6%가 연인에게 언어·정서·신체·성적 피해를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피해자들의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폭력 등 신체적 피해를 당한 188명 가운데 61.7%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찰에 신고했다”는 대답은 8.5%에 그쳤다.

출동한 경찰관이 긴급 임시조치로 가해자와 격리할 수 있는 가정 폭력과 달리 데이트 폭력은 가해자 접근 금지 청구권이나 피해자 진술 보호권 등이 없다. 이에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2월 사건 발생 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는 내용의 ‘데이트 폭력 처벌 특례법’을 발의하는 등 비슷한 법안들이 나오고 있지만 폐기와 계류를 반복하고 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연인을 개인의 소유물로 보는 인식이 데이트 폭력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라며 “피해자를 지원하고 가해자를 분명하게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찰은 이달 31일까지 집중 신고기간을 운영하고 피해자 신변 보호를 강화하는 등 데이트 폭력에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남양주=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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