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을 바라보는 취업준비생-근로자의 속내는…
“임금이 오르면 노동자의 사기도 오르지 않나. 최저임금이 대폭 올랐으니 더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취업준비생 강민우 씨·26)
20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의 한 강의실. 취업준비생 4명이 모여 최저임금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들은 대체로 최저임금 인상 자체에는 찬성했다. 다만 노동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강하게 제기했다. 3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오수영 씨(26·여)는 “최저임금이 오르면 노조도 임금을 올리자고 할 것이다. 기업은 신규 채용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며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2018년 적용 최저임금 시급이 7530원으로 사상 최대 인상폭(1060원·16.4% 인상)을 기록하면서 취업과 재취업에 나선 청년과 장년층 모두 폭풍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갔다. 동아일보는 서울시내 주요 대학가와 노량진 고시촌에서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들과 대학 청소용역 근로자 등 10여 명을 만나 최저임금을 둘러싼 진짜 속내를 들어봤다.
○ 허탈감에 빠진 공시생들
올해 9급 1호봉 공무원의 기본급은 139만5800원. 직급보조비(12만5000원)를 더해도 152만800원으로 내년도 최저임금 월급(157만3770원)보다 적다. 물론 공무원 급여는 여기에 각종 수당이 더해지고 보통 최저임금보다 높게 유지하기 때문에 최저임금보다 적을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하급 공무원의 ‘노동 가치’가 아르바이트생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는 ‘허탈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56 대 1의 경쟁을 뚫고 9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유모 씨(25·여)의 이달 실수령액은 197만 원. 초과근무 20시간과 직무수당 등을 모두 합친 금액으로 이를 제외하면 내년도 최저임금 월급보다 낮은 수준이다. 유 씨는 “같이 일하는 근로장학생이 있는데 월급이 우리와 비슷하거나 가끔 많을 때도 있다”며 “죽도록 공부해 합격한 건데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무원 급여도 당연히 큰 폭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3월부터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한 이예린 씨(22·여)는 노력과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이 씨는 “편의점 일과 공무원 일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길게는 3년가량 공부해야 공무원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데 9급 기본급보다 최저임금이 많아졌다니 허탈하다”고 했다.
청년들 사이에선 업주들이 앞으로 최저임금을 더 지키지 않을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넓게 퍼져 있다. 강휘호 씨(25)는 지난 3개월간 일한 카페를 최근 그만뒀다. 업주에게 주휴수당(1주간 소정근로를 개근하면 지급되는 유급휴일에 대한 수당)을 요구했다가 관계가 껄끄러워졌다. 강 씨는 “돈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을 거면 차라리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최저임금은 바라지도 않는다. 업주들이 근로계약서나 제대로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임금 인상으로 구조조정 공포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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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남는 게 없어요. 여행은커녕 외식도 못해요.”
최근 시급 830원 인상(인상 후 시급 7780원)을 요구하며 용역업체(100원 인상안 제시) 및 학교 측과 갈등을 빚고 있는 연세대 청소 근로자들의 입장은 강경했다. 내년 최저임금 시급인 7530원을 받더라도 한 가구가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최저생활도 유지하기 힘든 만큼 시급 1만 원이 될 때까지 계속 큰 폭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학교에서 14년 동안 일한 김모 씨(67)는 “주휴수당, 연차수당, 식대까지 다 포함해도 164만2057원밖에 손에 쥐지 못한다”며 “나도 가끔 아내와 외식을 하고 여행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손모 씨(67·여)도 “우리는 대부분 가장으로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한 푼도 저축하지 못했다. 노후 대비도 해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모두 노조(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에 가입돼 있고 노조는 근로자들을 대표해 용역업체 및 학교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같은 지부 소속인 이화여대 청소 근로자들은 이달 19일 학교 측과 시급 7780원에 잠정 합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조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고용이 보장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임금이 오르면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노희상 씨(61·월급 180만 원)도 좌불안석이다. 이 아파트는 자동 보안 시스템을 도입해 경비원을 4명으로 줄였다. 노 씨는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바로 우리 임금까지 오르진 않는다”며 “최저임금이 올랐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더 내보낼까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대화도 잠시,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서 재활용 쓰레기 분리작업을 하는 노 씨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혔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양길성 인턴기자 중앙대 사회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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