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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5 (화)

文대통령 “‘피해자는 우리’ 김군자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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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져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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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3일 89세로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군자 할머니를 애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할머니는 16세에 납치당해 중국에 위안부로 끌려가 모진 고난을 겪었고, 그 후 일본의 전쟁범죄를 증언하고 기부를 통해 남을 돕는 일에 평생 헌신했다”고 썼다.

문 대통령은 김군자 할머니를 “강인한 생존자, 용감한 증언자였다”라고 하며, “지난 2015년 12월 31일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를 뵀을 때 ‘피해자는 우리’라고 말했던 그 모습을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제 모든 고통을 내려놓고 하늘에서 평안하시라”며 김군자 할머니의 명복을 빌었다.

중앙일보

[사진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김군자 할머니는 23일 오전 8시 4분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김군자 할머니는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했다고 한다. 나눔의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할머니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거실에서 TV도 봤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별세에 나눔의집은 슬픔에 잠겼다.

김군자 할머니는 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琿春) 위안소로 강제동원됐다. 당시 17살 꽃 같은 나이였다.

일본군 ‘성 노리개’를 벗어나려 몇 번의 탈출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그때마다 가혹한 구타를 당했다. 구타 후유증에 왼쪽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를 안고 살았다.

광복이 되고서야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약혼자 등 사랑하는 이들을 차례로 잃은 김군자 할머니는 1998년부터 나눔의집에서 생활했다.

김군자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등록된 238명의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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