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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정규직화·최저임금·상생압박에 법인세까지…숨막히는 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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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세 밀어붙이나 ◆

매일경제

"새 정부가 재계를 너무 정신없이 몰아붙이고 있다. 반대하는 목소리, 다른 목소리를 내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다. 경기가 좋아서 다행이지 아니라면 곳곳에서 원성이 터져나왔을 것이다."

재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입은 있지만 말하기는 꺼린다. 정부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기업활동의 자유가 박근혜정부 시절보다 오히려 더 위축된 것 같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21일 재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문재인정부의 초기 주요 정책이 기업활동의 자유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기업활동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의 근간이지만, 문재인정부는 의도는 그렇지 않더라도 기업활동을 최대한 억압하려는 모습으로 비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새 정부 출범 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탈원전, 최저임금 인상, 상생·동반협력 방안 마련 등으로 기업 부담은 가중되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초반부터 더 몰아붙이자는 식이다. 전방위 압박에 숨 돌릴 틈도 없는데 정부는 재계에 양질의 일자리 창출까지 요구하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최근 경기가 좋아서 그나마 다행"이라며 "연구개발(R&D)비나 투자를 늘리라는 얘기는 언제 나오나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여권에서는 법인세 인상 방안까지 나왔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과세표준 소득 2000억원을 넘는 대기업에 대한 증세를 20일 주장했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추 대표의 법인세 증세 주장이 나오자 주변에서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며 "재계가 반성할 일이 많다고 해도 한꺼번에 모든 부담을 다 떠넘기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새 정부는 먼저 비정규직 문제로 재계를 몰아붙였다.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을 없애겠다는 대통령 공약에 민간 기업들도 호응해야 한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들었다가 수습에 진땀을 흘렸다.

지난 20일 정부는 공공 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민간의 동참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부는 "모범사례 발굴 등 홍보 강화를 통해 공감대를 확산하고, 정규직 전환지원금 확대 등을 통해 자율적인 전환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자율에 방점을 찍었지만 재계는 작지 않은 부담을 느끼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정부가 기간제법을 개정해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을 도입하기로 한 것을 두고 재계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상시적·지속적이고 생명·안전과 관련된 업무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다. 재계 반대가 심해 입법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회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일자리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며 "획일적인 일자리 규제는 오히려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업들이 정규직으로 채용할 바에야 신규 채용을 포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통계청 조사에서 50% 가까운 응답률을 보이고 있는 '자발적 비정규직' 문제도 정부가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6.4%에 이르는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도 기업활동 위축을 가져올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 '2020년 시간당 1만원'이라는 문 대통령 공약에 얽매여 편의점, 피자가게, 빵집 등을 운영하는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의 목소리는 무시당했다는 지적이다. 매일 8~9시간씩 편의점에서 일하는 점주 이 모씨(61)는 "하루 8시간 주 7일을 일해도 200만~250만원 남짓 버는데 이마저도 200만원 이하로 떨어지게 생겼다"면서 "최저시급이 설마 1만원이 될까 했는데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는 것을 보고 퇴직금을 모아 어렵게 문을 연 편의점을 접어야 하나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직원 40명을 고용하고 있는 도장업체 대표는 "생산성은 나아지지 않는데 최저임금을 한꺼번에 급하게 올리면 회사는 자금난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며 "결국 직원을 20%가량 줄이는 수밖에 대안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정부 눈치를 살피는 대기업들은 최근 잇달아 2·3차 협력사와의 동반성장 프로그램 확대에 나섰다. 이미 다양한 상생 방안을 자발적으로 시행 중이지만 정부 눈 밖에 날 것을 우려해 협력업체 지원을 더 늘리기로 한 것이다.

기업 옥죄기가 새 정부가 추진하는 일자리 창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면 해외로 나가는 기업이 늘어나 일자리 창출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지금까지 몰아친 것보다 더 큰 폭풍이 몰아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원자력·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중단에 따른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상법개정안은 기업활동 위축으로 귀결될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에 대한 어느 정도의 압박과 규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다"면서도 "기업이 숨 쉴 공간도 마련해주면서 중요한 문제부터 순차적으로 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문지웅 기자 / 박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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