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사양은 갈수록 높아지고 사물인터넷(IoT),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앞으로 반도체와 첨단 디스플레이 부품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 대부분은 전기전자업종이 상승장을 이끄는 이른바 ‘반디장세’ 현상은 당분간 지속된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삼성전자 주가가 사상 최고를 기록한 날 LG디스플레이 주가는 전거래일보다 8.17%나 떨어졌다. 2011년 9월23일(-8.71%) 이후 6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이다. 반디장세가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이목이 집중된다.
전문가들은 짧게 잡아도 3분기까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종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IT산업 동향을 측정하는 지표인 샌프란시크 테크 펄스 지수가 근거로 제시된다. 이 지수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많이 컴퓨터, 스마트폰 등 관련 하드웨어 제품을 사들였는지부터 IT업계의 고용규모, 제품개발에 투자하는 비용까지 반영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 전자제품 수출 추세와 대체로 맞아떨어지는 선행지표로 꼽힌다. 지난해 4월 77.10637까지 떨어졌다가 계속해서 완만하게 올라 지난달에는 83.16803을 기록했다.
지난해 이 지수가 다소 하락한 데 비해 우리나라 전자제품 수출량은 급격히 떨어지는 등 괴리도 있었다.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의 배터리 결함으로 인한 발화, 대량 리콜사태로 스마트폰 수출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전기전자 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와 가격은 예측해 볼 수 있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국내 전자부품 업체들의 수출실적이 9월까지는 호조를 보일 것이다”고 예상했다.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과점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장기간 반디장세 전망을 어렵게 한다. 세계 2위 낸드플래시 제조업체인 일본 도시바를 누가 인수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착된 국내 기업들의 과점체제에 금이 갈 수도 있다. SK하이닉스가 최종 승자가 되면 낸드플래시 부문에서 삼성전자와 2강 구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경쟁업체인 미국의 웨스턴디지털이 인수하면 이 부문 점유율 싸움에서 완전히 밀릴 수도 있다. 도시바는 대만 홍하이와도 협상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직까지는 가능성이 낮지만 도시바가 중국 자본에 넘어갈 경우 글로벌 과점체제는 사실상 깨지는 것으로 봐야 한다.
특히 반도체 가격변동은 수요 못지 않게 공급 요인이 크다. 김학균 미래에셋대우 투자분석부장은 “삼성전자가 공급을 잘 조절하고 있지만 업계 전체의 호황으로 경쟁사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공급량을 늘릴 경우 제품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투자 확대에 따른 공급량 증가 사이에 시차가 있기 때문에 3개월 정도까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상승장을 이끌 수 있다고 봤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의 경우 국내 업체들의 기술경쟁력이 뛰어나지만 가격요인 변동에 따른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예상과 달리 20일 LG디스플레이의 주가가 떨어진 이유는 19일(현지시간) 미국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이 발표한 디스플레이 패널 가격이 생각보다 낮게 평가됐기 때문이다. IHS마킷은 LCD TV 패널가격이 전월 대비 평균 6%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LCD는 LG디스플레이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매월 이맘때쯤 발표하는 패널 가격은 투자자들 심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원화마저 최근 강세로 돌아선 데다 LG디스플레이의 주력인 50인치 이상 TV용 LCD패널 가격이 하락하면서 주가도 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전기차·자율주행차, IoT 등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서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란 예상도 두고봐야 한다는 시각이 제기된다. 이종우 IBK리서치센터장은 “도스에서 윈도로 컴퓨터 운영체제가 바뀔 때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오래갈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1년 정점을 찍고 8달러 하던 반도체 가격이 1달러 아래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반도체가 전기차와 IoT에 얼마나 많이 쓰일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디스플레이 부문은 전통적으로 부품을 많이 소비해줬던 TV세트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세트업체들의 재고가 계속해서 느는 것도 악재다. TV 수요가 고점에서 점점 떨어지고 있다. 삼성전자 CE 사업부문뿐만 아니라 창홍(-4.9%), 하이얼(-4.8%) 등 중국 TV세트기업들도 연간 판매 목표를 보수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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