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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맞춤형 패션시대…봉제가 4차산업혁명 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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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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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가 만사(萬事)인 시대다. 문재인정부 역시 새 정부가 출범되기 전부터 청년을 위한 일자리 창출 공약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꿈'이라는 단어는 취업 전선에 내몰린 2030세대에게 호사스럽기 그지없는 사치가 되어버린 이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매일경제신문은 최근 서울 동대문 K-패션 쇼룸 르돔(LEDOME)에서 이상봉 패션 디자이너, 전순옥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위원장, 최병오 한국의류산업협회장(패션그룹 형지 회장)과 함께 패션업계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코앞까지 다가온 현시점에서 과거 전형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불렸던 패션과 봉제의 미래를 함께 고민했다.

―지금은 사양산업이지만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섬유·패션산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상봉 디자이너=우리나라가 1980년대 중반 개발도상국에 턱걸이를 할 무렵부터 사양산업이라고들 이야기했다. 그때부터 약 10년간 한국 패션이 정체기를 맞았다. 당시 정부가 섬유산업을 사양산업이라 생각하지 않고 2000년대처럼 지원했더라면 지금 세계적인 브랜드가 나왔을 텐데 아쉽다. 한 번의 실수, 정부의 정책적 실수가 선진화의 계기를 무산시켰다.

▷최병오 회장=우리나라 패션 대기업은 물론 중저가 제품은 이제 다 해외에서 생산한다. 샘플만 한국에서 만든다. 그나마 남아 있는 봉제 시스템을 키워주지 않으면 그땐 샘플마저도 해외로 나가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같은 경쟁자를 쫓아가기 바쁘게 된다.

▷전순옥 위원장=패션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국내에 생산 인프라를 어느 정도 규모로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봉제산업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해외에 아웃소싱을 주더라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봉제산업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전 위원장=예를 들면 미국은 이미 20년 전부터 미국 내 의류봉제 생산 캐파(능력)가 전체 생산량의 29% 이하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했다. 국내에 생산 캐파를 갖추지 못하면 해외 아웃소싱 업체가 부르는 게 값이 되고 그만큼 생산 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과거 뉴욕에서도 뉴욕시장이 봉제공장을 시 외곽으로 내보내려고 했을 때 패션 디자이너들이 반대해 이를 막았고 지금까지 '가먼트 스트리트(봉제공장 밀집지역)'가 살아남았다.

▷이 디자이너=이제는 중국이 우리를 거의 쫓아왔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이어 이제는 인도까지도 용트림을 한다. 많은 디자이너가 벌써 중국에 생산을 의존한다. 국내 봉제 인력 대부분이 60대 이상으로 고령화하면서 샘플 제작조차 중국에 의존하는 처지가 됐다. 최소한 샘플만이라도 해외에 나가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의 기반시설이 국내에 있어야 한다. 샤넬과 루이비통 등 글로벌 브랜드는 외국인 인력이 일반 생산공정을 담당하더라도 직원 교육이나 샘플 제작은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등 장인이 한다. 우리는 봉제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없어 기술을 이전할 수 있는 처지조차 되지 못한다.

―국내 봉제산업이 이렇게 침체된 원인은 어디에 있나.

▷최 회장=사양산업이라고 지적하는 것 자체가 유감이다. 그렇게 정의를 내림과 동시에 그 산업이 망가진다. 신발도 30여 년 전에는 부산을 대표하는 산업이었지만 당시 사양산업이라고 하면서부터 3년 만에 시설이 다 떠났다. 봉제산업을 사양산업이라고만 할 게 아니라 전문대 안에 봉제과를 만들어 전문인력을 양성하면 좋을 것 같다.

▷전 위원장=1980년대 후반이 되면서 더 이상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의지해오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자 사양산업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이 올라갈수록 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하는 산업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잘못된 산업화 과정에서 이런 인식이 자리 잡았다.

▷이 디자이너=봉제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봉제는 단순노동이 아니라 창의적인 활동이다. 최고 실력자가 되려면 최소 10년은 투자해야 하는 분야다. 공예 같은 분야에서는 인간문화재를 지정해 계승하는데 봉제도 그렇게 해야 한다. 특히 특성화고등학교처럼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렸을 때부터 봉제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면 이 분야 일자리가 위협받지 않을까.

▷이 디자이너=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는데 이 분야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패션이 더 개인화되고 대량생산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역설적으로 봉제가 더 각광받을 수 있다.

▷전 위원장=청년들이 스타트업을 차려 패션업을 해야 한다. 과거 노동집약적 산업이었지만 이제는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간다. 4차 산업혁명의 물결과 제조를 융합시켜야 진정한 혁명이 일어난다. 기존 전통적인 기술자들이 있는 곳에 젊은 청년들이 가서 정보기술(IT)과 창의력, 정보를 융합시키면 여기서 청년 일자리가 많이 나올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와 만나야만 혁명이 된다.

―젊은이들이 봉제산업에서 5년 후, 10년 후의 미래를 보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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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디자이너=디자인은 창조산업이라고 하면서 봉제는 단순노동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와이셔츠 하나도 일반적인 제품은 기계로 봉제하면 되지만, 칼라(목깃)를 조금만 작게 만들거나 삐뚤게 디자인하면 그건 기계로 안 된다. 패션산업은 일하면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봉제공장은 열악하고 힘들다고 여긴다. 이 불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중요하다. 패션으로 가려는 인력의 10%만 봉제로 넘어와도 훨씬 나아질 것이다. 해외에서는 봉제하는 사람들을 테크니션이라고 부른다. 지금 봉제하는 사람이 없어서 5년만 지나면 봉제하는 사람이 디자이너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날이 올 것이다.

▷전 위원장=영국 사례를 배워야 한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당시 총리가 된 후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봉제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1998년부터 런던에 '소잉(sewing) 아카데미'가 많이 만들어졌다. 디자이너들이 디자인만 하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 불과하고 봉제를 할 줄 알아야 하나의 완성된 패션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런 국가적 정책이 20년이 지난 지금 런던을 패션의 도시로 바꿔놨다.

▷최 회장=과거에는 봉제공장 환경이 열악했다. 조금만 시설에 신경을 쓰면 젊은이들이 올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서 인천에 '형지글로벌 패션 복합센터'를 신축하는데 2개 층에 봉제 시스템을 갖춰 인천 지역 사람들을 취업시키는 방안도 실천해볼 생각이 있다. 거기서 생산된 것은 바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봉제도 '드레스 테크니션'처럼 용어를 좀 바꿔서 인식을 전환하면 좋을 것 같다.

▷이 디자이너=새로운 기계를 도입하면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전 위원장=부처마다 나눠서 지원하다 보니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고 중복되는 것도 많다. 문재인정부가 이번 기회에 섬유패션산업 지원 예산을 하나로 통합시켜서 미래지향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현재 봉제공장들을 어떻게 4.0 공장으로 만들어서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독일처럼 제조강국을 만들 수 있다.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봉제스쿨' 같은 것을 만들어보면 어떨지.

▷전 위원장=일단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곳( K―패션 쇼룸 르돔)을 지을 때 서울시가 용지를 제공하고, 산업단지공단이 건물을 지었다. 당시 건축비용 160억원이 들었는데 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160억원만 지원하면 이 건물에 1~2개 층 공간을 확보해 청년들이 봉제기술을 배울 수 있는 만능 스쿨을 만들 수 있다. 이미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가 있으니 이를 학교 시스템으로 전환시키고 교육하는 것도 가능하다. 많은 예산이 드는 것이 아니다.

창업정보 공유하는 '동대문 앱'도 필요…원스톱 디자인센터 건립을

―동대문의 혁신적인 DNA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최 회장=동대문 패션이 말하자면 SPA(제조·유통 일괄) 브랜드다. 과거에도 디자인해서 완성품이 나올 때까지 3일밖에 안 걸려서 일본인들이 놀랐다고들 한다. 그만큼 동대문에 인프라가 내재돼 있다. 다만 신진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은 했는데 샘플을 뽑아낼 사람을 못 찾는다고 토로한다. 시스템화되지 않아 다들 알음알음 작업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앱)처럼 앱이라도 만들어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

▷전 위원장=동대문시장이 청년들의 창업보육센터 역할을 할 수 있다. 서울시가 동대문에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대 용지에 원스톱 디자인센터를 만드는 구상을 하고 있다. 어느 나라 업체든 이곳에 오면 디자인부터 완제품까지 원스톱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봉제공장이 몰려 있는 강북 지역 8개구 구청장들이 '동북권 패션·봉제산업 발전협의회'를 만들어 실태조사를 하고 서울시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제조가 만나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동북아 패션 컨트롤타워로 만들 수 있다. 대량생산은 불가능하지만 5000~1만장까지 생산 가능한 다품종 중량체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 디자이너=동대문을 지원하는 것은 좋지만 수요와 공급을 잘 따져봐야 한다. 이제는 동대문도 4차 산업혁명과 싸워야 한다. 동대문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온라인 쇼핑몰을 무시할 수 없다. 동대문 상인들도 직접 온라인 사이트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중국인의 발길 끊기면서 매출에 타격을 받고 있어서 수요 없는 무조건적인 공급만 해서는 안 된다.

▷최 회장=현재 두 개로 나뉜 패션산업협회와 의류산업협회도 하나로 합쳐야 한다. 두 협회 간에 합의만 하면 가능하다. 두 협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에서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디자이너=다른 분야에서도 오늘 같은 대담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학문과 취업이 연계되기 쉽지 않다. 실제 산업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일거리 창출과 가장 근접한 내용을 고민할 수 있다.

최병오 패션그룹형지 회장

△1953년 부산 출생 △2011년 단국대 경영학 명예박사 △2009년~ 패션그룹형지 회장 △2008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부회장 △2011년~ 한국의류산업협회장

이상봉 디자이너

△서울 출생 △1986년 서울예대 졸업 △1985년~ 패션업체 (주)이상봉 대표 △2012~2013년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초대·2대 회장

전순옥 민주당 소상공인특위 위원장

△1954년 대구 출생 △2001년 영국 워릭대 노동사회학 박사 △제19대 국회의원 △2017년~소상공인연구원 이사장 △2017년~ 한국패션봉제아카데미 대표

[사회 = 김대영 유통경제부장 / 정리 = 강다영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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