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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기아차 통상임금 재판 '신의성실 원칙' 적용여부가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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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소시 연간 영업이익보다 큰 3조원 이상 부담

"'신의칙' 판단시 차산업, 사회적 파장 등 고려해야"

뉴스1

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2014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자동차 사옥 앞에서 통상임금 확대 요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2014.8.28/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백진엽 기자 = 내달 17일 1심 선고를 앞둔 기아차 통상임금 재판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이하 신의칙) 적용여부가 핵심쟁점으로 떠올랐다. 과거 상여금을 통상임금의 일부로 보는게 맞다 해도 그로 인한 추가 지급이 노사간 신뢰를 깨고 형편에 비해 과한 것이라고 인정되면 과거분은 소급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20일 법조계와 업계에 따르면 이날 진행된 기아차 통상임금 재판 최종변론에서 노조는 미지급분을 '소급 지급'해줄 것을, 사측은 민법상의 '신의칙 적용'을 주장했다. 기아차 생산직 2만7458명은 2011년 10월 "연 750%인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다시 계산해 미지급된 수당 등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급기간은 소송제기시점부터 3년전인 2008년 10월부터 판결이 확정되는 시점까지다.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에도 '신의칙' 적용여부 변수로

신의칙이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 제2조 1항을 지칭하는 것이다. 법률관계 당사자는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는 법률상 대원칙이다.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이 적용된 것은 지난 2013년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재판의 대법원 판결이 대표적이다. 당시 대법원은 "노동자의 통상임금 확대 청구로 회사에 중대한 경영상의 위기가 발생한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돼 허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현재 법조계에서는 기아차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다소 우세하다고 보고 있다.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신의칙'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기아차 노조는 "연 750%인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고 단체협약 기준에 의해 각종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며 "기아차는 경영상 어려움이 없는 만큼 연장근로 등 각종 수당을 다시 계산해 미지급한 임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과거분을 소급해 지급하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측은 "과거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근로기준법을 초과해서 각종 수당 등을 지급해왔고 이미 성과급 등으로 충분한 보상을 해왔다"며 "그럼에도 노동조합에서 상여금 제도는 그대로 유지한 채 단체협약 기준에 의한 미지급 수당만 추가로 지급하라는 것은 노사간 신뢰를 깨는 행위이자 종업원의 고용유지와 근로조건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매년 이뤄지는 임금협상에서 노사 모두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임금인상 수준을 정해온 만큼 통상임금 판결에서도 그 정신이 존중돼야한다는 것이다.

노조 승소하면 기아차 3조 넘게 물어야…신의칙 인정되면 소급청구 배제

또 기아차가 패소할 경우 적자전환 등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점도 '신의칙' 적용여부에 영향을 주는 큰 변수다. 만약 법원이 노조의 손을 들어줄 경우 기아차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최대 3조원(회계 감정 기준)이 훌쩍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기아차의 연간 영업이익인 2조4600만원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다. 반면 법원에서 신의칙이 인정된다면 과거분의 소급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올해는 중국의 사드 보복과 미국 보호 무역 조치 등으로 해외 판매마저 부진하다. 상반기 기아차의 중국 판매는 전년대비 55%, 미국 판매는 10%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임금 소송까지 패소한다면 적자전환은 물론 경영위기도 피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아차 변호인 역시 최종 변론에서 "통상임금이 맞다고 하더라도 신의칙 적용 문제는 사회적 파장이나 자동차 산업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검토해 달라"며 "기아차의 어려움은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에서도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도 노사간 통상임금 합의가 되지 않아 추가 소송이 계속 발생할 수도 있다"고 어려움을 소명했다.

재판부 "신의칙 적용여부 충분히 검토할 것"

이에 재판부는 "사안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다"며 "내달 17일 오전 10시 선고할 때까지 충분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에는 1심에서 패했던 기업들이 2심에서 승소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1심 소송에서 패소했던 현대중공업, 한국GM, 아시아나항공, 타타대우 등 기업들이 2심에서 원심을 뒤집고 승소한 것.

아울러 최근 법원에서는 기존 노사합의 정신을 근거로 신의칙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다. 지난 2월9일에 있었던 현대로템 통상임금 1심 판결에서는 '지금까지 상여금이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지급됐다'는 내용 등을 근거로 재판부가 신의칙을 인정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반기 부진했던 기아차는 하반기에 신차 출시와 마케팅 등으로 반전을 꾀하려 하고 있다"며 "이런 시점에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영업 회복에 대한 동력을 잃을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대비마저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jineb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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