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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사패산·천성산 터널 사례 보면…" 한수원, 원전 공론화 간접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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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을 결정하는 이사회에 과거 국책 사업 중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결정을 내리려다 실패한 사패산과 천성산 터널 공사 분쟁 사례를 보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수원은 "찬반(贊反)이 명백한 이슈는 공론화 과정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설명을 달았다.

19일 자유한국당 김정훈 의원이 입수한 '한수원 제7차 이사회 회의록 첨부 자료'에 따르면 한수원은 정부 정책 변화에 따른 국책 사업 지연 사례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 구간 분쟁'과 '경부고속철도 금정산~천성산 관통 사업 분쟁'을 들었다. 한수원은 "공사 지연으로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면서 사실상 공론화 작업의 문제점을 시사했다. 그러나 한수원 관계자는 "이사회 요구로 작성한 문건일 뿐 공론화에 반대하는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조선비즈

2004년 천성산 터널 분쟁 때… -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었던 2004년 8월 천성산 관통 터널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지율 스님에게“2심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겠다”며 손을 잡고 있다. /조선일보 DB



사패산 터널 공사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업 중 일부로 2001년 6월 착공했으나 그해 11월 불교계와 환경 단체가 "사찰 수행 환경이 침해되고 북한산 국립공원 훼손이 염려된다"는 이유로 저지 농성에 나서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이듬해 대선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대안 노선을 검토하겠다고 공약하고, 취임한 뒤 공론 조사를 통해 결정하려 했으나 불교계가 '공사 강행을 위한 요식 행위'라며 거부, 공론화위원회 구성 자체가 무산됐다. 공론화를 모색하는 2년여 동안 공사는 중단됐고, 사회·경제적 손실은 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천성산 터널(현 원효터널)도 노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당시 환경 훼손과 지하수 고갈 등 이유로 백지화를 공약하면서 교착상태로 빠져들었다. 2003년 2월 공사 반대파들이 단식 농성 등을 벌이자 노 대통령은 공사를 중단하고 대안 노선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정부와 시민·종교 단체 관계자 21명으로 이뤄진 '대안 노선 및 기존 노선 검토위원회'가 발족했고, 3개월간 활동했지만 합의를 보지 못했다. 그해 9월 국무총리 산하 국정 현안 정책조정위원회는 기존 노선을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조선비즈



한수원은 사패산·천성산 터널 공사를 둘러싼 논의 과정을 설명하면서 "공론 조사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적 갈등을 더 심화시켰다"며 "공사가 지연되면서 사패산 터널의 경우, 5000억원에 이르는 사회·경제적 손실(상공회의소 추산)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한수원은 또 국책 사업 결정을 공론 조사로 해결하려는 시도가 결과적으로 "정부가 정해진 규제와 절차를 지켜 진행한 사업임에도 (불필요하게) 불확실성을 심어주면서 정부 신뢰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천성산 터널 분쟁 때도 지금 신고리 5·6호기 경우처럼 각계 인사로 위원회를 꾸려 합의를 통해 논란을 불식하려 했으나, 기대와 달리 합의를 보지 못했다. 찬반 양측 의견이 너무 달라 논란만 더 커졌다는 게 한수원 분석이다. 당시 천성산 공사를 두고 반대 측에선 착공 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으나, 대법원은 2006년 이를 최종 기각하면서 "전문 기관 조사 결과, 터널 공사가 천성산 환경에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김정훈 의원은 "산업부 등 관계 부처는 이 같은 과거 국책사업 지연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을 재고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한편 한수원은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 결정 전 이사들 법적 책임과 산업부 공사 일시 중단 요청 공문 효력에 대해 대형 법무법인 조언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사들이 배임 혐의로 고발되거나 손해배상 소송을 받을 것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법무법인 태평양 등은 "한수원은 공공 기관으로서 정부 방침과 산업부 장관 행정지도에 따라 건설 중단 결정을 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상법상 충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한수원은 에너지법에 따라 정부 시책에 적극 참여할 의무가 있고, 건설 임시 중단 결정은 이런 법률상 의무 이행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한수원 대주주인 한국전력도 이와 관련, "공기업으로서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거쳐 조치하기 바란다"는 공문을 한수원에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송원형 기자(swhy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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