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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경제 view &] ‘인공 태양’ 핵융합 고지가 보이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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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쌓아올린 원전 독자 기술

안전성 확보 4세대 원자로도 눈앞

꿈의 핵융합 발전 꽃 피우려는데

탈핵 선언으로 최고 기술 버릴 건가

중앙일보

정경민 기획조정2담당


1971년 3월 27일 주한 미 7사단 병력 2만명이 철수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속이 탔다. 북한 위협을 물리치자면 핵무기가 절실했다. 그때 캐나다 원전회사 캔두가 다가왔다. 월성 1호기를 맡겨주면 3만㎾급 실험용 원자로(NRX)를 끼워주겠다고 했다. 그 전까지 국내 원자로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경수로형을 썼다. 이와 달리 캐나다 캔두 원자로는 원자폭탄 원료인 플루토늄을 뽑아내기 쉬운 중수로형이었다.

하필 그때 인도가 기습적으로 핵실험을 했다. 한국이 수입하려던 캐나다 실험용과 똑같은 원자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원료로 썼다. 화들짝 놀란 미국은 한국에 대한 원전 기술 이전을 원천 봉쇄했다. 미국의 방해는 81년 전두환 정부가 핵무기 포기 선언을 할 때까지 계속 됐다. 그런데 한국에 다시 한번 기회가 찾아왔다. 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에서 방사능 누출사고가 일어났다. 미국에선 신규 원전 건설이 중단됐다. 미국 1위 원전설계회사 웨스팅하우스와 2위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은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CE는 한국에 사활을 걸었다. 당시 10여기 이상의 원전을 건설할 나라는 한국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CE는 영광 3·4호기를 맡겨준다면 원전 설계 기술을 넘겨주겠다고 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게 한국표준형 원자로인 ‘OPR-1000’이다. OPR은 개량 경수로라는 뜻인 ‘Opimized Power Reactor’의 약자이고 1000은 발전용량인 1000㎿를 말한다.

설계 기술을 확보한 한국은 92년 3세대 원자로 독자 개발에 도전했다. 7년 만인 99년 1400㎿급 3세대 원자로 ‘APR (Advanced Power Reactor)-1400’ 개발에 성공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에 총 186억달러(약 20조원)를 받고 수출한 그 원자로다. 이번에 건설이 일시 중단된 신고리 5·6호기에도 채택된 모델이다. 2014년엔 APR-1000을 더 개량한 APR+도 내놨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현재 4세대 원자로인 ‘IPower(Innovative Power)’를 개발 중이다. IPower는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제기된 안전성을 끌어올리는데 초점을 맞췄다.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수 저장탱크를 원자로 위에 설치하는 ‘신의 한 수’를 통해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쓰나미로 인한 정전으로 냉각수 펌프가 멈추는 바람에 원자로가 녹아 내려 발생했다. 그런데 IPower는 전기가 끊겨도 중력에 의해 냉각수가 밑으로 떨어져 원자로를 식힐 수 있도록 고안됐다. IPower는 APR+에 비해 공사기간도 절반 가까이 단축할 수 있다. 그만큼 수출 경쟁력이 높아진다.

한국은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 기술에서도 우등생이다. 현재의 원전은 핵분열 때 생기는 열을 이용해 증기를 만든다. 이와 달리 핵융합은 가벼운 2개의 원자핵이 합쳐질 때 생기는 고열을 이용한다. 에너지를 얻는 방식만 반대일 뿐 원리는 똑 같다. 핵분열과 핵융합을 ‘이란성 쌍둥이’ 기술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핵융합 발전소는 태양이 빛과 열을 내는 원리와 같아 ‘인공 태양’이라고도 부른다. 연료도 방사능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우라늄이 아니라 바다에 무진장 널린 중수소와 리튬을 사용한다. 핵융합 연료 1g이면 석유 8t과 맞먹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지금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유럽연합(EU)·중국·러시아·인도 7개국은 프랑스 카다라쉬에 세계 최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건설 중이다. 한국은 이미 2007년 차세대 핵융합로인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KSTR)’를 완공해 운영해오고 있기도 하다. 2040년대 상용화가 목표다.

한국이 핵융합 선진국이 될 수 있었던 건 20년 전 천신만고 끝에 얻은 원전 기술 덕이란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한데 핵융합 발전이 이제 꽃을 피우려는 찰라 ‘탈핵’을 선언하면 어떻게 될까. 원전을 짓지 않는 나라에서 원전 기술자는 찬밥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애써 키워놓은 인력과 기술을 중국에 다 빼앗길 판이다. 수십 년 걸려 쌓은 공든탑을 3개월 여론몰이로 무너뜨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깝다.

정경민 기획조정2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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