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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한완상·황교익… KBS엔 아직도 블랙리스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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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노조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 정면 부정행위"… 담당 간부 직위해제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노컷뉴스

1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 주최로 '고대영의 KBS에는 아직도 블랙리스트가 있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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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 자서전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다'를 펴낸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는 지난 5일, KBS 1라디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 녹음을 위해 KBS로 이동하려는 차에 갑자기 작가의 전화를 받았다. 녹음 당일 "사달이 났다. 국장이 이 방송을 취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연락을 전해 들은 것. 저서 말미에 실린 '문재인 대통령에게 개혁을 강조하는 당부 글'을 문제삼아, 한 전 총리의 출연이 부적절했다는 게 '출연 당일 취소'의 배경이었다.

#2. '밤의 제왕 수리부엉이' 등을 제작한 환경다큐 전문 PD인 KBS 신동만 PD는 KBS 1라디오 '이주향의 인문학 산책'의 '반갑다! 이 책' 코너에 출연, 자신의 저서 '쇠제비 갈매기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사례를 지적하며 하루빨리 생태계가 건강해지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자 1라디오를 담당하는 이제원 국장은 이 발언이 '공정성을 해친'다며 '부적절'하다면서 프로그램 폐지까지 언급했다.

#3. 지난달 10일, 이정렬 전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같은 프로그램의 '인문의 숲을 거닐다' 코너에 출연해 최근의 헌법 개정 논의를 인문학 관점에서 진단하고 분석했다. 이제원 국장은 이날 방송 직후 담당 PD에게 이 전 판사의 출연 계기를 따져물었고, '심각한 방송사고'라며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정작 이날 방송은 KBS 심의실의 심의를 무난히 통과했고 사후 심의에서도 '방송 내용이 충실했다'는 평을 받았다.

MB정권 이후 방송가에는 '블랙리스트'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불을 댕긴 것은 KBS였다. 개그우먼 김미화 씨가 '다큐3일' 내레이션을 맡고 나서 "김인규 당시 사장으로부터 지적을 당했다"며 2010년 '문건의 존재'를 처음 언급했고, 이후 가수 윤도현, 방송인 김제동, 정관용 시사평론가, 명진스님도 석연찮은 이유로 출연에 어려움을 겪었다. MBC에서도 소셜테이너로 유명한 배우 김여진 씨가 당시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하지 못하게 돼 논란이 됐다.

1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KBS 연구동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이하 새노조) 주최로 '고대영의 KBS에는 아직도 블랙리스트가 있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진 지 7년이 지난 현재도, KBS에서 일부 출연자들에 대한 '제한'이 있다는 것을 폭로하는 자리였다.

새노조 성재호 본부장은 "과거 블랙리스트에 김미화, 윤도현, 정관용, 명진스님 등이 포함돼 있었고 지난해에 선대인 소장이 중도 하차하고 얼마 전에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출연이 갑자기 취소된 경우가 있었다. 이번엔 한 전 부총리에게 출연 취소를 통보하며 KBS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르게 하는 치욕을 드리게 됐다. KBS 구성원으로서 너무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성 본부장은 "과거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에서 핵심적 악행 중 하나가 블랙리스트 운영이 아니겠나"라며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여전히 공영방송 KBS에서 (부당한 출연 제한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블랙리스트를 운용해 온 보직간부들을 여전히 자리에 앉혀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영 사장이 이같은 사태를 사실상 조장했다고 강조했다.

2017년판 '블랙리스트'의 피해를 입은 이들은, 이런 결정이 구조적 문제에서 벌어진 일이며, 따라서 사과 등 후속 조처도 '회사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전 부총리는 새노조와의 인터뷰에서 이제원 국장이 자신의 자서전을 읽지도 않고 자신의 출연 취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국장과 이경우 라디오센터장이 한 전 부총리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으나, 한 전 부총리는 "KBS 문화와 구조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적폐의 일환으로서, KBS 구조적·문화적 한계라고 본다. 사과를 하려면 사장이 문서로 나한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KBS1 '아침마당'에서 배제당했다고 폭로한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역시 새노조와의 인터뷰에서 "단지 주부를 위해 맛있는 식재료를 고르는 요령에 대한 방송인데 정치적인 것과 무슨 관계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KBS 공동의 이름으로 의지를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노조는 이런 '블랙리스트' 운용에 이제원 국장의 책임이 크다며 이전에도 제작자율성을 자주 침해해왔다고 지적했다.

새노조에 따르면 이 국장은 KBS 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에서 제작진이 '세계의 탄핵 사례'를 다루자고 발제하자 '반대의견도 똑같이 다룰 자신이 없으면 제작하지 마라'고 하거나, '19대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에서 패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국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것'이라는 취지로 평가하자 탄핵이 어떻게 국민의 힘으로 이뤄진 것이냐며 생방송 진행 중인 PD를 압박했다.

새노조는 "(이 국장은) 출연 섭외 전에 출연자 리스트를 작성해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출연자 사전 리스트'를 직접 검토한 뒤 부적격 출연자를 선정해 제작진에 통보했다"며 "이는 부적격 출연자를 정리한 블랙리스트가 단순히 무형의 명단 형태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형태의 명단으로 작성되고 활용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정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기에는 이 국장뿐만 아니라 이경우 라디오센터장과 고대영 사장까지 개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강도 높은 감사나 수사를 통해서 하루 빨리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CBS노컷뉴스는 '블랙리스트 운용' 관련 입장을 듣기 위해 이제원 국장과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한편, KBS는 새노조의 기자회견 이후 2시간 여 만에 이 국장을 1라디오 담당에서 직위해제하고 방송문화연구소로 전보 조치했다.

이후, KBS는 공식입장을 내어 "KBS에는 블랙리스트가 없다"며 "KBS 라디오센터는 담당 국장이 출연자 결정과정에서 주관적인 잣대를 적용했다고 판단해, 한완상 전 부총리에게 정중하게 사과드리고 양해를 구했으며 향후 KBS 라디오에 출연하겠다는 의사도 전달 받았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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