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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블랙리스트 피해자 흉내내는 공무원들 묵과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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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대통령 직속기구화 압박 본격화

3일 토론회에서 “피해자 행세하는 부역관료들 책임 물어야” 요구

문체부 난감함 속에 신속 조사 위한 대안 모색 움직임도



예상했던 대로다. 박근혜 전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 등에서 실행한 블랙리스트 공작의 진상을 캐기 위해 문체부와 문화예술인들이 꾸리기로 한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이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문화예술인들이 청와대, 국정원까지 조사 대상에 넣는 대통령 직속 조사기구 구성과 문체부, 예술위 부역자들의 철저한 색출과 처벌 쪽으로 목소리를 모으면서 압박을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애초 7월 초나 중순께 조사위를 출범시킬 계획이었지만, 예술인들의 요구가 강경하고 포괄적이어서 조직 구성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3일 도종환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청산과 개혁-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대토론회’는 예술인들이 포문을 여는 마당이 됐다. 이 자리에서 김미도 연극평론가, 이양구 극작가 등 예술인들은 블랙리스트 작성, 배포 등의 실행에 가담한 문체부 관료들 상당수가 상부의 강압적 지시로 피해를 본 것처럼 코스프레(흉내내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김미도 평론가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의 필요성과 의미’라는 발제문에서 피해자처럼 행세하는 부역 관료들의 직위와 이름을 거명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특정 연출가의 작품을 문제 삼아 지원공연 출품 포기를 종용하고 각서까지 받은 문예위 간부 ㅈ부장, 예술인 지원 심사위원과 지원자 명단을 내놓지 않으면 자르겠다고 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과 직원들을 협박한 문체부 간부 ㄱ정책관, 국립국악원 기획공연에서 블랙리스트에 거명된 특정 연출가의 작품 배제에 주도적 역할을 한 ㅇ재외국문화원장 등이 언급됐다. 이들은 적극 블랙리스트 작업에 개입했는데도 사과 없이 윗선의 지시에 희생된 피해자인 것처럼 처신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김기춘, 조윤선 등 블랙리스트 주동자들의 재판에서 가장 큰 피해자인 예술인들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도 표출됐다. “블랙리스트가 국가기관의 반헌법적 범죄인 만큼 진상규명을 약속한 대통령의 공약을 실행하려면 대통령령으로 직속 진상조사기구를 두어야 한다”는 게 토론회에서 모아진 의견들이었다.

이와 관련해 문체부는 지난달 30일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 출범을 위해 문화예술인들과 공동으로 사전 준비팀을 꾸린 상태지만, 예술계 의견이 광범위한 조사 대상과 심도 높은 조사방식을 요구하는 쪽으로 모아지자 난감해하며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이영열 예술정책관 등 문체부 간부 6명과 예술계 민간위원 10명으로 구성된 준비팀은 조사위 구성과 조사 대상, 활동 방식 등을 정하기 위한 협의 모임 성격이지만, 논의 방향은 예술인들이 주도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예술인들 주장대로 조사 대상을 국정원과 청와대 쪽으로 확대할 경우 수사권에 준하는 조사권 확보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령 이상의 법제 신설이 필요하며, 청와대의 경우 관련 문서를 삼십년 기한으로 밀봉조치한 상태여서 신속한 조사는 더욱 난감한 상황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예술인들 내부에서도 조사의 현실적 실효성을 찾기 위한 대안들이 논의중인 것으로 안다. 더욱 긴밀하게 소통하며 상황을 지켜보려 한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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