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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기자수첩] 反블랙리스트, 공든 탑이 무너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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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측 이름이 좀 길죠.” 3일 오후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열린 ‘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대토론회’ 사회를 맡은 김재엽 연출은 머쓱한 듯 웃었다.

이날 토론회 주최 측은 ‘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연극인회의’(이하 블랙타파)와 ‘적폐청산과 문화민주주의를 위한 문화예술대책위’(이하 문화예술대책위)였다. 민간 예술인 주도로 발족한 두 단체명에는 뼈아픈 검열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겼다.

공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로 넘어갔다. 문체부는 문화예술계와의 시각 차를 좁히기 위해 고전 중이다. 문체부는 지난달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 출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사전 의견 수렴을 위한 TF(태스크포스)를 발족했다.

핵심은 진상조사위 구성 방식이다. 문체부 훈령으로 조사위를 구성할 경우 일의 진척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문체부나 산하기관으로 조사 대상이 제한된다. 반면 대통령령에 의해 대통령 직속 기구로 운영될 경우 문체부뿐만 아니라 청와대까지 조사할 수 있다. 단 입법예고, 국무회의 의결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행까지 통상 2개월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계는 법률 또는 대통령령에 따른 조사위 구성을 주장하고 있다. '속도'보다는 '본질'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블랙리스트'는 문체부 밖에서도 쓰여졌다. 3일 검찰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 블랙리스트 관련 피고인 7명에게 징역 3 ~ 7년형을 구형했다. 이들 중 정무수석 당시 일이 문제가 된 조 전 장관을 제외하면 문체부쪽 인사는 2명 뿐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양구 작가는 “블랙리스트 사태는 ‘지원배제’ 사건이 아닌 국가 공식기구의 조직적 국가범죄”라며 “(조사위를) 문체부 장관 직속으로 설치할 경우 블랙리스트 사태를 문체부 지원배제 사건으로 축소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 주체이자 대상이 되는 문체부 공무원에 대한 신뢰 문제도 남는다.

도 장관은 토론회에 참석해 이날 오전 이뤄진 구형을 언급하며“오늘은 의미 있는 날”이라고 했다. “블랙리스트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의 실행이 남았다. 지난한 겨울을 버틴 예술인들은 좀 더 기다리더라도 완연한 봄이 오길 기대하고 있다.
머니투데이

구유나 기자 yun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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