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제기 보면서
목소리 내자는 여론 많아
잘못 인정하고 용서 비는 게
양국 평화로 나가는 길”
시민단체도 “책임” 촉구
한국과 베트남 역사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베트남 유학생 도 응옥 루옌(34)이 한국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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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 자랑스럽다고 말하는데 베트남 사람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 봐 주었으면 합니다.”
베트남에서 유학온 도 응옥 루옌(39)은 28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과거사로 인해 피해자 입장을 주장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베트남전에서의 민간인 학살과 같은 가해자적 입장에 대해서는 무딘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루옌은 2003년 한국에 처음 들어와 석·박사 학위(한국어교육 전공)를 모두 마치고 현재 국내에서 살고 있다.
루옌은 택시에서 만난 기사들이 왕왕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그는 몇년 전 만난 베트남참전회 관계자로부터 들은 “베트남전 당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앞으로 거기서 한글과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다”는 말에도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루옌은 “그분의 말은 일본인이 ‘위안부 할머니가 많이 사는 지역에 가서 일본어와 가라테를 가르치고 싶다’고 하는 것과 같은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루옌은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한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다”는 연설이 베트남 현지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베트남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죽인 대가로 경제 성장한 것도 영광스럽게 여기는가” 등의 발언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베트남 외교부도 지난 12일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에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양국의 우호협력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발언과 행동을 삼가줄 것을 요청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루옌은 “베트남 내에서는 베트남전과 관련해 용서의 정서가 지배적이지만 한국인들이 위안부 문제를 일본에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루옌은 “전쟁 당시에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것보다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해 앞으로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이 평화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베평화재단을 비롯한 53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등 과거사 문제에 책임 있게 대응할 것을 촉구했다.
베트남 현지의 민간인 학살 현장을 직접 다녀왔다는 고교 3년생 이예진양(18)은 이 자리에서 “(베트남 전쟁이) 우리에게는 애국의 역사였지만 누군가에게는 학살의 역사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논란의 한가운데는 바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의혹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며 “역대 정부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피해조사와 진상규명 작업이 단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보니 베트남 곳곳에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와 위령비를 통해 짐작할 뿐 피해자 통계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정부가 더 늦기 전에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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