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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소시지로 기적 만드는 제주맘 ‘괸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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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나랏님도 풀지 못한다는 숙제를 척척 해결해 나가는 이웃들이 있다. 돈벌기는 기본! 우리 동네에 일자리를 만들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환경을 지키는 착한 기업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히든 챔피언’ 즉 대중한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장을 이끄는 우량기업의 새로운 모델이 아닐까? 머니투데이는 서울형 사회적기업 이로운넷과 공동으로 '우리 동네 히든 챔피언'을 발굴해 그들의 활약을 소개한다.

[[쿨머니, 우리 동네 히든챔피언] 장애인 직업재활 새 모델 만드는 사회적기업 평화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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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평화의마을 임직원들. 겉보기로는 누가 장애인이고 비장애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애인 직원들의 직업 재활이 잘 이뤄져 있다.

제주 시골의 장애인 사회적기업이라는 걸 알고 찾아갔는데도, 헷갈렸다. 댄디하거나 힙하게 저마다 자기 스타일 따라 연출한 옷차림, 낯선 방문객한테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 건네는 사교성, 지금 바로 서울 신촌이나 강남으로 나가도 빠지지 않을 외모를 갖춘 선남선녀들. 작업복을 벗은 평화의마을 직원들을 보며 누가 장애인이고 누가 비장애인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회복지법인 평화의마을 문 안으로 들어서면 장애는 남다름이 된다. 장애인은 장인이 된다. 26명의 장애인 직원과 5명의 훈련생, 사회복지사 등 10명의 비장애인 직원들은 장애인이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맛있어서 잘 팔리는 소시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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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고급 리조트 '카이로스'는 제주맘 소시지로 시그니처(대표) 메뉴를 개발해 고객의 높은 취향을 사로 잡았다. 제주맘 수제소시지는 물렁물렁한 일반 소시지와 달리 전분으로 뭉치지 않아 고기의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

수제소시지 브랜드 ‘제주맘’은 국내 최고급호텔 뷔페 메뉴로 납품되는 맛과 품질을 자랑한다. 홍콩으로도 수출된다. 2013년엔 육가공계의 올림픽이라 할 만한 국제육가공박람회(IFFA)에서 금메달 6개를 받았다.

제주의 고급리조트 ‘카이로스’를 운영하는 윤순황 대표는 “리조트 고객을 위해 차별성 있는 조식 메뉴를 개발하려다 제주맘 소시지를 만났다”며 “국내에서 만드는 걸로는 최고의 맛이라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장애인 일자리 만드는 좋은 기업이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매출은 13억3000만 원 남짓했다. 아직은 소기업 규모다. 고추, 매실 등 재료를 직접 키우고 간장 등 양념도 직접 담가 발효식으로 만드는 슬로푸드 수제 소시지라 시장 반응이 좋아도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적기업들이 영세한 제주 사회적경제계에서 평화의마을은 ‘규모의 경제를 이룬 사례’로 꼽힌다. 강종우 제주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은 “제주맘이 규모의 경제를 이루게 된 건 이귀경 평화의마을 원장이 소시지 기술 배우러 독일로 찾아갈 정도로 열정을 쏟아 제품력을 높인 덕분”이라며 “로컬푸드에서 체험서비스까지 6차 산업을 이끄는 롤모델로 꼽히고 있다”고 평했다.

여기까지 17여년이 걸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여 함께 시행착오를 극복해가면서 천천히 발전했다. 밀어내고 끌어당기고 부닥치고 품어주면서 이들은 ‘괸당’이 됐다. 제주 사람들이 ‘친족처럼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만든 ‘괸당’은 부모들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던 변화를 장애인 직원들한테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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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귀경 평화의마을 원장(왼쪽)은 수제소시지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독일의 한 소시지 명가로 무작정 찾아가 비법 전수를 부탁했다. 독일어를 모르는 상태로 훈련을 시작했지만 밤마다 독학해 결국 최고 성적의 추천서를 받았다.

◇ 게임중독자에서 승진 1호로, 파괴자에서 검수원으로 ‘작은 기적들’

미리 알고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그저 말을 느리게 하는, 수줍은 많은 청년으로 보였을 것이다. 지적 장애 2급인 송종복 씨(34) 얘기다. 한때 노숙인 같은 모습으로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했다던 그는 지금은 직장 내 패셔니스타이자 장애인 1호 승진 사례가 됐다. 인터뷰를 하던 날엔 대전 출장을 막 마치고 돌아온 길이었다. 비행기와 시외버스를 타고 제주 바깥으로 출장을 다니는 건 그한테 별로 어렵지 않은 일로 보였다. 정말 심각한 장애가 있었던 걸까?

“말 더듬는 게 심했어요. 긴장하면. 평화의마을에 와서 달라졌어요. 삶을 새로 시작한 계기였어요. 그전에는 생활이 일정치 않았어요. 자신감도 없고 자기관리도 안 했어요. RPG(롤플레잉게임)에 빠져 PC방에서 지냈어요. 밥도 거의 안 챙겨먹었어요. 평화의마을 선생님들이 잘해줬어요. 동료들도 잘해줬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게임의 유혹은 질겼다. 월급이 수중에 들어오면 PC방에서 게임을 하느라 2박3일씩 출근을 거르는 때도 있었다. 그랬던 송씨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었을까? 이귀경 평화의마을 원장(58)은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활은 쉽지 않아요. 이끌다 힘들어서 손을 놓으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버려요. 한 사람이 놓기 전에 다른 사람이 그걸 잡아주고, 또 다른 사람이 잡아주고, 그러다 보면 예측하지 못했던 어느 순간, 변화가 와요. 그러니 손을 놓을 수가 없어요.”

이런 사례도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있으면 가위로 잘게 찢어 변기에 넣던 소년이 있었다. 학교 왕따 시절의 강박적인 스트레스 해소법이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평화의마을 앞마당엔 어느날 포크레인이 들어왔다. 꽉 막힌 하수관을 뚫고 보니 붉은악마 단체 반팔티 따위 그가 싫어하던 물건들이 잔뜩 나왔다.

이 원장이 아이디어를 냈다. ‘아예 자기가 싫어하는 물건을 태우는 일을 맡기자!’ 소년은 소각장 담당자로 임명됐다. 15년 후 소년은 강박적인 특성을 살려 어떠한 불량품도 놓치지 않는 꼼꼼한 검수원으로 거듭났다.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장애’로 여겨지던 특성은 ‘역량’으로 바뀌었다. 비 오는 날에도 밭에 물을 주는 강박증은 제품 안전을 철저히 지키는 꼼꼼함이 된다. 공격성은 야무짐이 된다. 평화의마을에서 12년째 생산을 맡고 있는 고승철 공장장은 “우리 작업장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서로의 역량에 맞는 작업을 하면서 하나의 소시지를 만들어내는 동료들이 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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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전 처리 담당'으로 승진한 송종복 씨(오른쪽)는 지적 장애 2급이지만 평화의마을에서 훈련 받은 후 대전까지 혼자 출장을 다녀올 만큼 생활력과 실무력이 높아졌다.

◇“장애인을 세금의 수혜자에서 세금의 기여자로”

“비록 어떤 ‘기능’이 남보다 약한 사람이라 해도 자신이 더 발전하기를 바라고 누군가 더 사랑할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와 비해도 약하지 않아요. 다만, 그걸 발현할 기회를 얻기가 남보다 어려울 뿐이지요.”

장애인이 일을 통해 사회 속에서 자신을 발현하도록 돕겠다고 결심한 이 원장이 장애인 직업 재활시설이 적은 제주로 건너온 건 2000년. 처음엔 훈련생 모집조차 어려웠다. 이웃이면 누구든 ‘삼촌’이라 부르며 돕는 제주 특유의 ‘괸당’ 문화는 의외의 걸림돌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서로 돌봐주다 보니 장애인과 부모들은 직업 재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내 자식은 보낼 필요 없다’는 부모들을 ‘돌아가신 후에 애 혼자 어찌 살지 생각하시라’며 설득해 한 명씩 훈련생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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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생활가정 '우리집' 앞에서 평화의마을 직원들이 동료들과 나눠먹을 비파 열매를 따고 있다. 평화의마을은 금전관리부터 헤어스타일링, 대중교통 이용법 등 다양한 생활훈련을 직업훈련과 병행한다.

제빵 등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이 원장은 손이 많이 가는 고급 수제소시지를 만들어 일자리를 늘리기로 작정했다. 공장이 세워지면서 고승철 공장장, 김덕윤 직업재활팀장, 정선열 운영지원팀장 등 지금의 주축 멤버가 모였다. 동네 대신 직장에서 장애인의 새로운 ‘괸당’을 모은 셈이었다.

이들은 장애인을 수혜자에서 동료직원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 입사 8년차 정선열 팀장은 “초창기 사회복지사 선생들이 제주시, 애월 등 제주 전역에서 오는 훈련생들한테 출퇴근 훈련을 시키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며 “지역사회에 한 구성원으로 통합되려면 그 지역사회의 시설을 이용해야 한다는 철칙은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화의마을은 이들에게 단순히 ‘월급 주는 직장’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였다. 입사 11년차 김덕윤 팀장은 “월급날이 되어도 통장에 얼마 찍히는지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일이 내 일이니까요”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국의 직업 재활 역사는 2000년대에 시작됐어요. 장애인을 세금의 수혜자에서 세금 기여자로 바꾸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하잖아요.”

◇국내 고용 장애인 3명 중 1명 비임금근로…‘우리들의 천국’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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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장애인 고용률은 36.1%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고용률 61%에 크게 못 미친다. 장애인 근로자 중 32.4% 즉 셋 중 하나는 비임금노동자다. 가족의 자영업장 등지에서 임금 없이 일한다.

이런 현실에서, 장애인이 직원 10명 중 7명이고 그들 모두 정규직인 사회적기업이 있다는 이야기는 그들만의 천국 같이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동네마다 이들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의 ‘괸당’이 생긴다면 어떨까. 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직업이 비장애인한테도 좋은 직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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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이경숙 기자 ks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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