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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8 (토)

[금지를 금지하라](6)유신시대·1980년대의 유물 ‘금지·검열’…지금도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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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의 문화정치사

경향신문

1987년 4월 검찰 관계자들이 이른바 불온서적을 압수해 정리하고 있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많이 읽혔던 노동운동 관련 책들이 들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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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책

아직 그 계보학이나 문화정치사가 정밀하고도 총체적으로 정리되지는 못했지만, 금서와 출판 검열에 관한 많은 사회적 논의와 학술적 검토가 있었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관한 것이자 민주사회에서 언제나 뜨거운 논쟁거리인 표현의 자유에 관한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는 두 가지 부류의 ‘빨간 책’이 금서와 ‘금지된 독서문화’를 대유한다. 알다시피 그중 하나는 포르노물이며 다른 하나는 이른바 불온서적이다. 왜 무관한 듯한 외설과 불온이 ‘빨간’색(핑크와 레드)으로 겹쳐져 검열의 양대 축이 됐을까? 각각은 한반도 인간의 욕망과 사상을 짓눌러온 지배질서의 두 중축(中軸), 유교적 가부장제와 반공 냉전질서와 연관돼 있다. 때로 두 빨간색은 직접 겹치기도 했다. 지배계층과 권력의 부패와 특권을 비판할 때 종종 ‘외설’이 동원되기도 한 것이다. 제1공화국 특권층을 비판한 소설 <자유부인>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사건 당일의 7시간에 관한 상상력은 이에 관한 사례다.

특히 한국의 검열체제 중에서도 책과 출판에 대한 금지·검열은 뭔가 대단히 ‘미개’하며 반지성적인 것으로 간주돼왔다. 이는 일단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체모에 맞지 않는 일이거니와, 앎과 독서에 대한 통제가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독재를 정당화하고 천민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데에도 악용·남용돼 왔기 때문이다.

이젠 책과 출판에 대한 금지·검열은 유신시대나 1980년대에나 있을 법한 과거의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숙명적인 지정학 배경과 지배 헤게모니의 취약성 때문일까? 신문지법·출판법(1907~1908)이 제정된 이래, 한반도의 검열 기구와 그 관료들은 언제나 쉬지 않고 ‘열일’ 해왔다. 무려 100년의 역사다.

대한민국에서 ‘출판의 자유’에 대한 규제는 ‘출판사및인쇄소의등록에관한법률’ 같은 국내 간행물 출판 일반에 관한 법, ‘외국 간행물 수입 배포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해 중층 결정되어 왔다. 정기간행물 검열의 경우 그 법적 기초가 된 것은 1946년 5월29일 미군정청이 발포한 “군정법령 제88호 ‘신문급 기타정기간행물허가에 관한 건’”이었다. 이 법은 식민지시대 신문지법·출판법 등의 법령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 법들은 지금은 거의 폐지된 수준으로 개정됐고 마음에 들지 않는 문화예술인들을 종북·좌익으로 몰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던 박근혜·김기춘과 그 하수인들 몇은 감옥에 갔지만 지금도 ‘공안세력’은 건재하다.

■ 역사적 맥락

최근에도 ‘이적 표현물’ 소지·반포·판매 등에 관련해서 악명 높은 국가보안법 7조 5항 등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노동자가 구속된 뜬금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로 PDF 파일로 된 1970~1990년대 인문·사회과학 서적 정보와 자료를 제공해온 ‘노동자의 책’(http://www.laborsbook.org/) 이진영 대표가 2017년 1월5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의 ‘맥락’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존속하고 있는 국가보안법(국보법) 체제다. 알다시피 국보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에서 배우고, 대한민국이 내전과 학살을 통해 성립되면서 제정된 악법이다. 문제는 이 무소불위의 악법이 ‘민주화 이후’에도 결정적으로 개정되거나 폐지되지 못한 채, 저항운동과 통일운동을 탄압하고 사상·학문·출판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에 의하면 애초에 ‘노동자의 책’ 사건을 만든 기관은 서울경찰청 보안수사4대라 한다. 신촌 보안분실로 불리는 이곳은 바로 1987년 1월 박종철을 고문하여 죽인 남영동 대공분실과 같은 기능을 하는 곳이다. 아직 “홍제동, 장안동, 옥인동, 신정동, 대신동 등 서울에만 다섯 곳의 보안분실이 있”다. 이런 기구는 다양하고 또 중복된다. 검찰 공안 관련 부서 외에도 국정원(옛 안기부)·보안사·경찰 등은 서로 협력하거나 때로 경쟁하며 국보법 사건을 일으켜왔다. 그들은 부여된 권력을 고문·불법구금 같은 방식으로 휘두르고 또 시민사회나 의회권력에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이런저런 많은 간첩 사건 및 ‘이적’ ‘반국가단체’ 사건을 기획·조작하고 피해자를 양산해왔다. 김기춘이라는 상징적인 인물이 보여주듯 그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번 사건도 그런 측면이 있다. “이진영씨에 대한 구속은 그들의 체제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책동”(경향신문 1월13일 ‘오창익의 인권수첩-단지 책 때문에 사람을 가두는 나라’)이다. 검열은 이런 일을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자 그 과정의 하나이다.

경향신문

1985년 5월 관계당국이 압수해 공개한 불온서적들. 계급갈등이나 노동자의 권리 등을 다룬 책들까지도 모두 불온서적으로 취급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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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 사건은 개화기 이래 금서 지정과 공안기관에 의한 인문·사회과학 독서에 대한 검열과 탄압 역사의 오랜 전통(?) 속에 있다. 대한제국기에는 고종의 봉건 권력과 일본 통감부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 일제강점기 때는 이른바 ‘국체’라 일컬어지는 천황제 체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을 막고 민족주의·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광범위한 금서를 지정하고 책과 신문·잡지에 대한 삭제·압수·판금 처리를 일상적으로 행했다.

그래서 검열을 빼고는 한국 지성사도 문예사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검열은 일상 공무이자 출판인이나 문필가들이 늘 스스로 의식해야 할 ‘어두움’이었다. 한국 지식인·문필가·기자의 글쓰기와 상상력의 임계점을 정한 것은 외국의 대문호나 노벨상·퓰리처상 같은 것이 아니라 중앙정보부(국정원)와 검찰·경찰의 밥줄과 ‘공안 정세’였던 것이다.

읽는 이들에게도 그랬다. 흔한 얘기지만 1970~199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이들 중에는 금서를 둘러싼 ‘웃픈’ 기억을 가진 이가 적지 않다. 집회 현장 근처나 교문을 통과할 때 무시로 가방 수색을 당하고 재수 없으면 경찰서에 끌려갔다. ‘막스’와 ‘맑스’가 구분되지 않았고, 대학가 서점은 이중 책꽂이를 설치하여 압수수색에 대비했다. 누군가 거리에서 돌멩이를 던지다 잡혀가거나 ‘조직’ 사건에 연루됐을 때, 친구들은 그의 책꽂이부터 ‘정리’해 주었다. 독자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뭔가 모험의 길로 들어서는 마음으로 어떤 책들을 읽고 몰래 감춰두었다. 또 그런 책들을 자식의 책꽂이에서 본 부모들은 경기와 함께 가정불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번 ‘노동자의 책’ 사건이 흥미로운 것은, 이진영 대표가 운영하던 디지털 아카이브와 그에 대한 검찰의 단죄가 가진 역사적 상징성이다. ‘노동자의 책’에서 제공한 대부분의 PDF 파일들은, 그리고 검찰이 구속 당시 문제 삼은 130종 서적들은 대부분 절판된 것들이다. 즉 더 이상 상업성이 없거나 독자가 없어 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 안 읽을까? 왜 안 팔릴까? 여기에 1980년대로부터 2010년대 사이의 ‘시간’의 의미와 함께 검찰과 경찰이 한 일의 의미가 들어있다. 또한 바로 그것이 디지털 아카이빙 사이트로서의 ‘노동자의 책’의 ‘역설적’ 존재 이유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건을 만든 공안-주체들은 일종의 ‘레트로(복고) 마니아며 ‘장기 80년대’의 신봉자다. 이번 사건과 책들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의 문화운동과 그 산물의 ‘귀환’이다.

검찰이 ‘이적’이라 규정한 130종은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1) <페다고지>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유명 외국 저자의 인문·사회과학 서적, 2) <자본론> <독일이데올로기> <철학의 빈곤> 등 철학·경제학의 마르크스주의 원전, 3) <국가와 혁명> <무엇을 할 것인가> 등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 이론이나 그 해설서, 4) 중국·소련 등 구사회주의 국가에서 나온 문학작품이나 인문·사회과학 서적, 5) <피바다> <꽃 파는 처녀> <세기와 더불어> <한 자위단원의 운명> 등 주체사상 관련 서적 및 북한 소설 등, 6) <노동해방문학> <대중운동 세미나> <강철서신> 등 국내 저자들의 변혁운동 관련 저작물과 정간물.

이 책들은 대부분 1980년 중반 이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사회운동과 지성사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이를테면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 사이에 금서로 지정되거나 삭제·압수됐던 책들은 달랐다. 그중에는 리영희·김지하·백기완이라든지 계간 ‘창작과 비평’이 포함돼 있었다. 2000년대에도 다르다. 국방부는 2008년 한총련이 펼친 ‘현역 장병 도서 보내기 운동’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23종의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그 이유도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등이었으나 대부분은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김진숙의 <소금꽃 나무>,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등 2000년대에 출간된 ‘신간’이었다.

■ 1989년으로부터

이에 비해 이번 ‘노동자의 책’ 사건의 책들은 새삼 1980년대로부터 왔다. 1985년 5월 초 대학가 서점에서 팔리고 있던 책을 압수수색하면서 313종의 금서 목록이 새삼 밝혀진 적이 있다. 그 속에는 <김대중 옥중서신> <비록 박정희시대> 김지하 시집 등이 포함돼 있었다. 1987년 8월에 한국출판운동협의회는 무려 738종의 책으로 ‘판금도서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출판사별로 제출된 이 책들은 재판회부(국보법), 재판회부(경범법), 압수대상, 시판중지 종용, 납본 거부, 납본필증 미교부, 재판제작 금지 등으로 분류되어 1980년대 중반까지의 거대하고도 복잡다단한 검열제도를 보여준다. ‘민주화’ 조치 이후에도 한동안 금서·검열 사건은 그치지 않았다. 일련의 자유화 조치가 취해지자 묶여 있던 ‘이념 서적’들이 대규모로 출간되고, ‘북한 바로 알기 운동’(1988)이 벌어지고, 임수경의 방북(1989) 등 통일운동의 물이 올라 북한 서적도 간행됐기 때문이다. 1989년의 이른바 공안정국하에서 치안본부와 대검찰청이 4월과 11월에 국보법 사건을 벌여 또 각각 나름의 금서 목록을 내놓았다. 2017년 ‘노동자의 책’ 사건의 책은 이 1989년 목록과 가장 비슷하다. 그즈음 출간된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 주적과 이적

여론의 질타와 변호인단의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검찰은 공소 내용을 변경했다. 구속 때의 ‘이적표현물’을 반 이상 줄이고 주로 북한 서적을 문제 삼은 것이다.(이들도 김정은 체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주체사상 관련 서적과 항일무장투쟁을 다룬 문학작품들을 그대로 복각한 상당히 오래된 남한의 책들이다.) 공소장에서도 북한이 얼마나 무서운 적인지 핵개발 등 ‘도발’의 내용을 길게 기술했다. 이는 시대를 거슬러도 북한이라는 존재가 여전히 우리 체제의 최종적 판단기준, 또는 ‘자유’에 반하는 ‘공포의 심연’이라는 점을 이용하려 한 것이다.

지난 대선 과정의 주적 논란에서 보듯 ‘적’은 모호하다. 군사적 대치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화·협상의 상대인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적이 모호하니 이적성은 더 모호하다. 그래서 이적 규정이 남용돼 온 걸 아는 대법원은 2004년에 이미 “표현물의 전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그 작성의 동기는 물론 표현행위 자체의 태양 및 외부와의 관련사항, 표현행위 당시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결정하여야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2004도3212 판결)

‘노동자의 책’ 사건은 이런 판례도 무시한 검경에 의해 벌어졌지만, 근본적으로 맥락을 무시하고 ‘적의 주장’과 문구가 비슷하면 ‘적’이라는 사고, 또는 ‘적’의 글을 읽으면 ‘적’의 주장에 동조하고 ‘적’을 돕게 된다는 너무나 단순한 발상에 근거한 것이다. 이 일차방정식이 바로 국보법의 법철학(?)인 바, 이는 생각하고 판단하며 양심의 자유를 가진 ‘책 읽는 인간’의 복잡한 지성·감성에 매우 무지한 소치인 것이다. 그 같은 ‘법 규정’이 여전히 2017년의 세상과 인간을 구속하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이번 사건의 결과가 보여줄 것이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천정환

경향신문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다. 한국 근대 독서사를 연구한 <근대의 책 읽기-독자의 탄생과 한국 근대문학>을 비롯해 <자살론>, <대중지성의 시대>, <1970 박정희 모더니즘>(공저),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공저),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 등의 책을 냈다.


<경향신문·인문학협동조합 공동기획>

<천정환 |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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