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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말글살이] 국어공부 성찰 / 김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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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퍽 오래전에 국어에 대한 재미있는 조사가 하나 나왔다. 서울 사는 학생들에게 ‘서울’의 반대말이 뭐냐고 물었더니 다수가 ‘시골’이라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대구에 있는 학생들한테 ‘서울’의 반대말이 뭐냐고 물었더니 대다수가 ‘대구’라고 답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렸을까? 아무도 틀리지 않았다.

이 조사는 반대말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문화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니 국어공부는 밑줄 치고 외우는 게 아니라 깊이 생각하는 연습을 더불어 하는 게 옳다. 아버지의 반대말은 어머니인지 아들인지 아니면 딸인지? 땅의 반대는 하늘인가 바다인가? 살펴보면 대칭의 짝이 모두 반대말이 되는 것도 아니다.

좀 더 사회적인 주제를 골라 보자. ‘남자’의 반대는 ‘여자’일까? 혹시 생각을 비틀어서 ‘남자’와 ‘여자’를 비슷한말로 보면 안 될까? 또 더 나아가 ‘남자’와 ‘수컷’을 비슷한말이 아닌 반대말로 보면 안 될까?

사실 남자와 여자는 신체의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같다. 그런데 우리 습관에는 서로 반대인 것 같다. 또 남자와 수컷은 성격의 몇 군데를 빼놓고는 같은 점이 별로 없다. 그런데 보통 비슷한 것처럼 생각된다. 결국 반대말이냐 비슷한말이냐 하는 것은 실체가 아닌 문화적 관념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늘 다듬어 써야 한다.

최근에 저서에서 특히 남녀 관계의 표현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 몇몇 유명인사들의 글에서는 반짝이는 재치와 도발 정신이 돋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질타를 받은 것은 세상이 그들을 곡해하는 면보다는 그들이 변화한 언어적 감수성을 담아내지 못한 면이 많은 것 같다. 말은 늘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맞추어 벼려서 써야 한다. 그것이 평생 해야 할 국어공부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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