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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기자칼럼]‘J노믹스’가 성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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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 역사박물관에는 경제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손수건 한 점이 전시돼 있다. 이 손수건에는 미국 경제학자인 아트 래퍼가 직접 그린 ‘래퍼곡선’이 있다. 래퍼곡선이란 세율을 계속 올리면 세수입이 늘어나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세수입이 되레 줄어든다는 뒤집어진 유(U)자형 곡선을 말한다. 1974년 9월13일 래퍼는 미국 워싱턴의 한 식당에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증세정책을 비난하며 즉석에서 손수건에 이 곡선을 그렸고, 동석한 도널드 럼즈펠드와 딕 체니 등 보수정치인들을 설득시켰다. 이후 래퍼곡선은 미국 보수정부의 감세를 통한 경기활성화를 뒷받침하는 이론이 됐다.

따지고 보면 래퍼곡선은 아주 상식적이다. 100% 세금을 걷어가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생산도 멈춰 정부가 거둘 수 있는 세금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래퍼곡선은 아직까지 경제이론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세수입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지점, 그때의 세율이 얼마인지를 누구도 수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늘리는 정책이 성공할까요?”

어제 점심 자리에서도 이런 질문을 지인에게서 받았다. 명색이 경제부 기자니까, 경제부 기자의 의견을 듣고 싶다는 것이지만 기저에는 “성공하지 못하겠지요?”라는 답을 기대하는 의중이 깔려 있다. “비정규직 전부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최저임금 1만원이 가능한가요?” 등도 비슷한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분 중에는 경제를 꽤 안다고 자처하는 분들이 많다. 경제학을 공부했거나 기업 임원일 경우다. 학교에서 배운 경제학적 상식에 따른다면 공공일자리 확충은 정부 재정만 갉아먹을 우려가 있다. 비정규직을 없애거나 최저임금을 급격히 높이면 사용자들의 비용부담이 커져 일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고민이 생긴다. 문재인 정부는 왜 이상한 정책을 꺼낸 것일까. 그래서 되물어본다. “그럼 지금처럼 하면 될까요?”라고.

세상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다. 민간의 일자리 창출 능력은 얼어붙은 지 오래다. 비정규직이 너무 많아 고용과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고, 내수 위축까지 발생하고 있다. 최저생계를 책임지지 못하는 쥐꼬리만 한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현 경제정책 어딘가에 탈이 났다는 얘기다. 어제와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새로운 처방전을 낼 수밖에 없다. 그게 공공일자리고, 정규직화고, 최저임금 1만원일 수 있다.

공공일자리가 재정파탄을 가져오고, 정규직화와 최저임금 1만원이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래퍼곡선과 매우 닮았다. 재정파탄을 불러올 공공일자리의 숫자를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변곡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공공일자리 비중이라는 21.3%보다 높을 수도, 낮을 수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 상승으로 자영업자들이 사업을 접는 시급이 9000원일지 1만1000원일지 알 수 없다.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숫자들이다.

미국 시카고 학파의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우리나라에서 기업 중심의 성장경제학을 벗어나면 두려움부터 커진다. 하지만 이는 ‘부두경제학’일 수 있다. 부두경제학이란 경제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지만 그럴 것이라고 믿어온 경제학 이론을 말한다. 래퍼곡선도 이 범주에 속한다.

공공일자리 확충도, 정규직화도, 최저임금 1만원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기왕 한다면 힘 있게 추진했으면 좋겠다.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얘기다. 많은 저항이 있을 것이다. 무조건 실패한다는 전문가도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지금 상황에서 ‘J노믹스’가 성공할지 안 할지 점칠 수 있는 천재는 없다. 모든 것은 문재인 정부와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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