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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교육부 위 교육감? 교육부 평가도 안 받겠다는 교육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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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교육감들 제안 닷새 만 성취도평가 바꿔

외국어고·자사고 폐지 등 목소리 커진 교육감들

초·중·고교 넘어 대학정책까지 적극 관여

김상곤 후보자 지정 뒤 목소리 더욱 커져

"현장 의견과 상관 없이 교육감 이념 실현은 잘못"

중앙일보

지난 9일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국정기획자문위와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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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 국가 차원의 교육정책에 대해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학부모·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차원보다는 교육감 개인의 이념을 실행하는 성격이어서 "교육감들이 교육부의 상왕이 됐다"는 비판이 교육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새 정부 들어 막강해진 교육감들의 영향력을 보여준 것은 지난 14일 교육부의 학업성취도평가 변경이 대표적이다. 2008년 도입돼 전국의 초등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교 2학년 학생 전체가 보는 시험으로 이른바 '일제고사'로 불린다. 기초학력이 약한 학생들을 파악해 이들의 학업능력을 끌어올린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교육감들은 지역별로 학생들의 학업능력 수준이 비교돼 이를 불편해왔다. 일부 교육감은 지역 내 학교에 이 시험을 보지 않도록 종용해 교육부가 이들을 고소해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던 차에 지난 9일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들의 모임인 교육감협의회가 이 시험을 전에 학생이 아니라 일부만 보도록 바꿀 것을 국정기획위원회에 건의했다. 그러자 닷새 만인 지난 14일 교육부는 해당 학년 중 소수를 표집해 일부만 학업성취도평가를 보도록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10년 가까이 고수해온 입장을 교육부가 하루아침에 바꾼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교육부가 여러 이슈를 놓고 교육감들과 대립하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이런 변화는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나타났다. 지난 달 국정기획위 업무보고에서 교육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국고지원 하겠다’고 밝혔다. 이 역시 최근 수년간 교육감들이 꾸준히 주장해왔으나 교육부는 '불가' 입장을 보여온 사안이다. 이런 모습에 대해 김재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그간 교육감이 요구해온 정책을 새 정부 출범 이후 교육부가 대거 수용하는 모양새다. 민선교육감인 김상곤 후보자가 교육부 장관으로 내정되면서 이 같은 분위기가 더욱 굳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김 후보자를 지명하자 진보 교육감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 후보자 지명 이틀 뒤인 13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학교를 줄세워 서열화하는 정책은 없어져야 마땅하다”며 경기도 내 외고·자사고 폐지 방침을 발표했다. 이튿날 조희연 교육감이 이끄는 서울시교육청은 “6월 말 조희연 교육감이 서울 소재 외고·자사고 재지정에 대한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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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자사고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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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교육감들의 이런 요구가 학생·학부모 등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와는 엇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감들이 외고·자사고 폐지 발표 입장을 밝히자 민족사관고 등 5개의 자사고가 반대성명을 냈다. 이어 서울지역 자사고학부모연합회는 19일 조 교육감을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조희연 교육감은 "외고·자사고 폐지 권한은 교육청이 아니라 교육부에 있다"며 사실상 면담 자체를 거부했다. 외고·자사고 학부모들은 26일 외고·자사고 폐지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다.

자사고인 휘문고의 신동원 교장은 “외고는 제도가 도입된 지 30년이 넘었고 자사고도 10년 가까이 돼가는데 해당 학교 학부모·학생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보지도 않고 교육감들이 나서서 없애려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도 “교육감은 임기가 내년 6월까지고 외고·자사고 폐지 등은 실제 그 이후에나 가능하다. 교육감들이 장기적 교육정책에 대해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일부 교육감의 '소신' 정책은 현장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 아니어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지난해 6월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경기도 내 고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폐지하는 일환으로 사실상 저녁 급식을 금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경기도에선 저녁을 제공하는 고교 비율(3월 기준)이 지난해 86%에서 올해 22%로 떨어졌다. 이렇게 되자 학교에 남아 저녁 이후까지 공부하던 학생 중 대다수가 그 전에 학교 급식믈 먹다 이제는 컵밥·라면 등으로 저녁을 때우고 있다.

이런 실태에 대해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그간 교육부 권한을 축소하고 교육청의 권한을 확대해 왔는데 이는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이지 교육감들에게 힘을 몰아주자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교육감의 소신 때문에 오히려 개별 학교의 자율권은 최근 약화되는 추세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사립고 교장은 “역사 국정교과서가 나왔을 때 교육감이 교장들을 불러 교과서 신청을 취소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교육감이 학교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데 교육감 권한을 강화하면 전국 시도에 17개의 교육부가 새로 생겨나는 결과”라고 말했다.

최근 교육감들은 초중등교육법(9조)에 명시된 교육부의 교육청 평가까지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지난 17일 교육감협의회는 7월 안건으로 ‘교육청 평가 폐지’를 올리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청한 경기도의 한 사립고 교장은 “국가 예산을 받아 쓰면서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교육청이 교육부의 평가를 받지 않겠다면 교육청도 개별 학교 운영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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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평가배점


교육감들은 초·중·고등학교 정책을 관할하는데 올 들어선 대선을 전후해 대학정책에까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3월 서울대 등 10개 국립대학을 하나로 묶는 '통합국립대학', 학생을 공동 선발하고 공통 교양과정 운영하는 '공영형 사립대학'을 제안했다.

휘문고 신 교장은 “교육감들이 교육청 관할도 아닌 대학에 대해서까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내년 교육감 선거를 의식한 행동인 것 같다. 교육감은 정치인이 아니라 교육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송기창 교수도 “교육부의 정책에 대해 교육감들이 의견을 내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교육감이 먼저 국가 교육정책을 쥐고 흔드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윤석만·전민희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전민희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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