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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정신장애인들 ‘귀가’하는데 돌봄 채비는 ‘부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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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밥&법] 정신건강보건법 전면개정 시행

정신질환 강제입원율 60% 넘어

억울함 줄이려 요건 강화했지만…

퇴원뒤 사회복귀 돕는 시설 부족

주민 싫어해 지자체 설립 소극적

성인 4명중 1명이 겪는 정신질환

보건소 센터서 도움받으려 해도

요원 1명이 중증환자 100명 관리

한달에 한번 만나기도 쉽지 않아

재활 위한 입소시설 등 확충 시급

복지부 “퇴원 환자수 맞춰 늘릴 것”


한겨레

서울의 한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일하는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이 사설 응급이송차량을 이용해 정신질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서울 지역 한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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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지난달 30일 시행됐다. 억울한 강제입원을 줄이겠다는 취지인데, 시행 한 달이 안 돼 졸속이란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퇴원해 사회로 돌아올 정신질환자들을 받을 준비가 안 돼 있다는 것이다. 또 정신장애인들은 “인권 측면에서 법이 여전히 미흡하다”며 반발한다. 개정된 법은 환영받지 못하고,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사람들은 정신질환자들의 ‘대거 퇴원’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주로 언론에 의해 드러나고, 부추겨진다. 시작은 <조선일보>였다. 전면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시행 두 달 전인 지난 4월1일 <조선일보>는 ‘정신 질환 1만9000명, 6월부터 퇴원 예정’이란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입원 중인 중증 정신질환자(조현병, 반복성 우울장애, 양극성 장애)와 알코올중독자는 각각 4만2210명, 1만7604명인데 이 중 23~32%가 법 시행 뒤 넉 달 안에 대거 사회로 나올 것이라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한국중독정신의학회의 추산을 인용했다. 기사는 ‘병원 밖은 환자를 돌볼 사람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법 시행에 대비한 준비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마치 교도소 범죄자들이 대거 풀려나는 상황을 예고하는 듯한 언론 보도는, 법이 시행되고 난 최근에도 계속 이어진다.

지난 12일엔 입원 중인 정신질환자 중 노숙자로 지내다 입원한, 연고 없는 이들이 문제가 됐다. 새 법은 무연고 환자의 강제입원을 연장하기 위해 법원이 정한 보호의무자의 동의를 받도록 했는데, 2000명가량으로 추산되는 전국의 무연고 정신질환자의 후견인을 일일이 지정하고 동의를 받는 절차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어 그사이 이들이 퇴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4일에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다. 개정법은 환자를 2주 이상 입원시키려면 서로 다른 병원에 속한 전문의 2명의 진단이 필요하도록 했는데, 진단을 내려줄 다른 병원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실제 퇴원시킨 사례가 나왔다는 것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이때마다 “보호의무자가 없어도 시장이나 군수·구청장에 의한 입원조치(행정입원)가 가능하다”거나 “추가 진단 전문의의 배정을 못 받은 경우 동일 병원 내 전문의가 추가 진단을 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언론은 주로 환자들의 퇴원을 우려하고 정부는 이를 해명하길 반복한다. 언론 보도는, 일정 부분 사회의 인식 수준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두렵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들이 거리로 풀려나올지 모른다고 느낀다. 일종의 공포영화가 연상되지만, 문제는 병원에 갇힌 그들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 한국은 일반인 정신건강도 문제 본인 의사에 반해 입원하는 강제입원율은 한국의 경우 60%가 넘는다. 10%대인 선진국(독일 17%, 영국 13.5%, 이탈리아 12%)과 견줘 차이가 크다. 우리는 정신 질환을 예방하고 관리하기보다 질환을 방치해 결국 환자가 돼버린 이들을 사회와 격리해 문제를 해결해왔다. 손쉬웠으나 강제입원이란 치료 수단만으론 한계가 있었다. 복지부가 2001년 이후 5년마다 실시하는 정신질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이들의 비율을 뜻하는 ‘정신질환 평생유병률’은 지난해 25.4%였다. 한국 성인 네 명 중 한 명은 살면서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조현병, 알코올 오남용 같은 정신질환을 겪는 것이다. 특히 지난 1년 동안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이들의 비율을 뜻하는 ‘일년유병률’은 지난해 470만명가량으로 전체 인구의 11.9%였다. 한국에선 성인 15.4%가 평생 한 번 이상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고, 3%는 실제 자살을 계획하며, 2.4%는 자살을 시도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나라 중 자살률 ‘부동의 1위’인 나라임에도 정신병원 같은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가 적고, 정신건강에 문제가 발생해도 한참 뒤에야 병원과 기관을 찾는다. 정신 문제를 터부시하는 ‘인식’의 문제와, 주변 도움을 구하기 힘든 ‘기반’의 문제가 함께 존재한다. 환자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개선이 필요하지만 갈 길이 멀다.

퇴원한 환자만이 아닌, 일반인들이 가장 손쉽게 접하는 ‘정신건강 인프라’는 각 지역(기초지자체 단위) 보건소가 운영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다. 서울은 센터마다 통상 12~13명의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일하는데 그야말로 “정신건강의 백화점이 돼버린 지 오래”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사가 된 뒤 별도의 1년 수련 과정을 거쳐 정신건강전문요원이 된 박아무개씨는 서울 한 자치구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만 5년째 일하고 있다. 이 자치구의 센터가 관리하는 조현병, 반복성 우울장애, 양극성 장애 같은 중증정신질환자는 지난달 508명이었다. 박씨를 비롯해 중증질환자를 전담하는 4명의 정신건강전문요원이 이들을 맡는다.(다른 전문요원들은 아동청소년 사례 관리나 우울, 자살, 알코올중독 같은 업무를 한다.) 박씨는 100명 남짓, 가장 많은 동료는 150명가량을 ‘관리’한다. 이 자치구의 중증질환자는 올해 3월엔 504명, 4월엔 505명으로 조금씩 늘고 있다. 16일 박씨는 “원래 사례 관리라는 건 그 사람의 어려운 환경을 평가하고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적극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걸 뜻한다. 한데 부끄럽지만 지금은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만나기도 버겁다. 사실상 문제가 터져야 개입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하는 일은 언젠가부터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사고처리반처럼 변해 있었다.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는 1995년 정신보건법이 시행되면서 서울 강남구를 시작으로 세워졌다. 처음엔 퇴원한 중증질환자의 사회복귀를 돕는 일이 주된 업무였지만, 점점 우울증과 자살, 아동청소년, 중독 관련 업무들이 추가됐다. 동주민센터나 보건소, 소방서 같은 기관의 도움 요청도 잦아졌다. 민원인이 정신건강 문제를 호소하면 센터로 연락이 오고, 박씨 같은 전문요원이 나가 상태를 살펴 관리 대상에 포함하거나 병원으로 데려간다. 박씨가 일하는 센터로 들어온 기관 의뢰 건수는 2014년 28건에서 2015년 63건, 지난해 88건으로 급증했다. 모두 중증질환자들로 인한 문제였는데, 서울시와 정부가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을 펼친 2015년 이후 확연히 늘고 있다. 박씨는 16일에도 재산권 문제로 다투던 이웃 주민이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동주민센터를 통해 온 연락을 받고 다녀왔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민원 넣는 분들은 말씀을 함부로 하세요. ‘무조건 입원시키라’고 하는데 법적으로 그렇게 못하거든요. 당장 자해나 타해 위험이 있어야 해요.”

개정법은 정신질환자의 응급입원 상황이 발생하면 환자 상태를 평가하고 전문의 확인을 받아 입원 절차를 진행하는 일을 센터의 정신건강전문요원이 하도록 했다. 하지만 박씨는 자신이 없다. “다른 복지기관 사회복지사 사례 관리 인원은 평균 30~40명 수준인데 우리는 100명이 넘어요. 게다가 최근엔 오늘처럼 응급 의뢰로 출동하는 일이 많아 예방 관리는 거의 되지 않죠. 지금도 이런데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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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 환자 사회복귀시설도 부족 박씨를 비롯한 서울 지역 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전문요원들은 지난해 말 과다한 업무와 불안정한 고용 등을 이유로 50여일 파업을 벌였다. 보건소가 지역의 개인병원 등에 센터 업무를 위탁하면서 계약 종료와 함께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상황이 문제였다. 파업 뒤 일부 자치구 보건소가 위탁에서 직영으로 센터 운영 방식을 바꿨지만, 3~4곳은 외려 인원을 7~9명 수준으로 줄여버렸다. 인건비를 절감한다는 이유였는데, 그 때문에 상황은 더 열악해졌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 추경에서 정신건강전문요원을 370명 더 충원하겠다고 밝혔지만, 241곳인 전국 센터당 1.5명꼴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신규 채용 대상 지역에서 서울은 제외돼 있다. 센터 요원당 사례 관리 인원을 선진국 수준인 30명대로 낮추려면 1400명가량의 인원 증원이 필요하다. 부족한 인력 탓에 간단한 약물치료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될 이들이 지금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퇴원한 정신질환자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시설도 부족하다. 입소생활시설이나 주간재활시설, 공동생활가정, 직업재활시설 등 정신질환자 사회복귀시설은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336곳으로, 시군구별로 1곳 남짓하다. 시설이 아예 없는 곳도 태반이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퇴원 환자들이 집처럼 생활할 수 있게 만들어진 입소생활시설(25명 정원)은 서울의 경우 4곳에 불과하다. 한국사회복귀시설협회에 등록된, 주거형 재활시설은 전국에 총 172곳인데 정원을 모두 채우더라도 2200명을 수용하는 데 그친다. 게다가 예산의 절반이 국비인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달리 사회복귀시설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의 전부를 감당하는 지방이양사업이다. 주민들이 싫어하는 기피시설이라 지자체가 돈을 들여 시설을 늘릴 유인이 적다. 차전경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지금까진 정신질환자들이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시설 부족 문제가 제기되진 않았지만 앞으로가 문제”라며 “늘어날 퇴원 환자 수에 맞춰 시설을 확충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새 법을 시행하면서도 정부가 강제입원을 판단하는 정신과 전문의 확보에만 열을 올린 채 정신질환자들의 사회복귀를 돕는 인프라 확충을 등한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현병 등 정신질환을 겪은 이들은 대개 사회생활이 어려워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을 위한 배려는 적다. 홍석철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상근활동가는 “새 법을 보면 장애등급을 재판정할 때 최근 1년 내 취업 기록이 있는지를 보는데, 기록이 있으면 이전에 1등급이었더라도 4등급(등급외)을 받게 된다. 직장생활을 하다 스트레스로 병이 재발돼 해고되면 1년 안엔 장애인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치구 정신건강전문요원 박씨도 “정신장애인들은 같은 장애인들 사이에서도 따돌림을 당한다. 일반적인 장애인 복지조차 소외돼 있다.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정책적 관심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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