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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처음엔 불속 뛰어든 아들 원망, 이젠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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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청룡봉사상]

義賞 ― '초인종 의인' 故 안치범… 부모 인터뷰

"지금도 '엄마' 하고 올 것 같아 아직도 아들 방 안치우고 있어… 상금은 의미있는 곳 쓸 것"

조선일보

"아들이 이 상을 받으면 얼마나 좋아할까요. 장한 우리 아들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고(故) 안치범(28·사진)씨의 어머니 정혜경(58)씨가 아들의 사진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 아버지 안광명(63)씨는 "처음엔 불구덩이로 뛰어든 아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은 '잘했다, 아들아'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불이 난 건물에 뛰어들어 이웃을 대피시키고 숨진 '초인종 의인(義人)' 안치범씨가 제51회 청룡봉사상 의상(義賞) 주인공이 됐다. 안씨는 지난해 9월 9일 오전 4시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5층 건물에 불이 나자 가장 먼저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그러나 곧바로 연기로 가득 찬 건물로 다시 들어갔다. 화재 사실을 모른 채 잠든 이웃을 깨우기 위해서였다. 안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초인종을 누른 덕분에 주민 모두가 무사히 대피했다. 많은 생명을 구했던 안씨는 건물 5층 옥상 입구 부근에서 유독가스에 질식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사고는 안씨가 방송사 성우 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집에서 나와 학원 근처 원룸으로 거처를 옮긴 지 두 달 만에 일어났다. 어머니 정씨는 "아들이 방에서 밤늦게까지 발성 연습을 하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지금도 현관문을 열고 '엄마' 하고 들어올 것 같아서 아직도 아들 방을 치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5일 안씨의 서울 마포구 자택 방 벽면에는 의사자(義死者) 지정서와 서울시·소방본부 등 각종 기관에서 받은 상장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정씨는 "아들이 받았어야 하는 상들을 우리가 대신 받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고(故) 안치범씨가 생전에 썼던 방 선반엔 그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는 상장, 상패가 가득하다. 어머니 정혜경(왼쪽)씨와 아버지 안광명씨는 아들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 등을 보관한 이 방을 치우지 않고 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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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안씨의 의행(義行)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그를 기리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안씨를 의사자로 인정했다. 서울시도 "살신성인의 정신을 통해 안전한 서울을 만드는 데 기여한 공이 크다"며 안씨에게 '서울시 안전상'을 수여했다. 한국성우협회는 안씨에게 '명예성우' 자격을 줬다. 한 사회적 기업은 안씨의 희생정신을 기리자는 뜻에서 '안치범 소화기'를 마포구 1인 가구 청년 1500여 명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안씨의 부모는 "많은 분이 아들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떠난 지 아홉 달이 넘었는데 청룡봉사상 소식을 들으니 아들이 너무 그립다"며 "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아서 따뜻한 위로가 된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그렇게 떠나보내고 우리가 상금을 받는다는 게 민망하다"며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의미 있는 곳에 쓰겠다"고 했다.

안씨는 대전 현충원에 묻혔다. 부모가 아들을 보러 가면, 비석 앞에 항상 꽃이 수북하다고 한다. "우리 모르게 아들을 찾아 꽃을 놓아두고 가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치범이가 천국에서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은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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