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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닭, 살아서도 죽어서도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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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닭의 위상

한국인에게 닭은 특별한 동물이다. 예부터 길조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왔던 닭의 흔적은 고대 신화, 선조들의 그림, 그리고 옛 지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을 알린 건 하얀 닭이었고 혁거세의 부인 알영 부인은 닭의 모습을 한 용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 신라가 국명이 정해지기 전까지 '계림(鷄林)'이라고 불린 것은 설화의 영향이 크다. 조선의 선비들은 관직을 준비할 때 닭의 그림을 집안에 걸어두었다. 닭의 벼슬이 관직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요한 날과 극진한 대접의 중심에 항상 있어왔다. 처가에 찾아온 사위에게 장모는 씨암탉을 잡았고, 여름 대표 보양식에는 빠질 수 없는 메뉴였다. 하지만 현재 꼿꼿한 벼슬로 새벽을 알리는 모습보다 식탁 위 튀겨진 모습으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닭. 대한민국의 닭의 일생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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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육류 소비량에서 닭이 차지하는 비중은 2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 순으로 많이 먹는데, 이 중 닭고기 소비량은 공장식 사육형태가 도입되는 1970년대부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식품통합정보서비스 옥답4.0에 따르면 연간 1인당 13.8Kg의 닭고기를 소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OECD에서 발표한 2014년 우리나라의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에 따르면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15.4Kg이다. 치킨집에서 주로 쓰는 *10호닭이 약 1Kg인 것을 생각하면 연간 우리가 먹는 치킨은 대략 14~15마리라고 할 수 있다.

*닭의 중량을 나타내는 기준은 호수이다. 닭의 내장과 머리, 발, 털을 제거한 닭도체의 무게에 따라 5호부터 17호까지 정해진다. 크게 소, 중소, 중, 대, 특대로 나뉘는데 5호부터 6호까지가 소, 7호부터 9호까지 중소, 10호부터 12호까지 중, 13호와 14호를 대, 15호부터 17호까지를 특대로 본다. 가장 작은 호수인 5호는 451g에서 550g이 나가며 가장 큰 17호는 1.65㎏이상을 가리킨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먹는 삼계탕용 닭은 6호, 치킨에 쓰이는 닭은 10호 정도에 해당한다.

닭의 일생

우리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닭은 육계이다. 고기로 이용되는 닭과 채란계닭 중 알을 더 이상 낳지 못하는 폐계닭이 여기에 속한다.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는 육계는 일명 브로일러(broiler)라고 불리는 종으로 자라는 곳은 한국이지만 품종은 수입종이다. 몸집이 통통하고 다리가 짧아 육고기로 쓰기에 매우 적합하다. 하지만 서양에서 튀김용으로 먹기 위해 개량한 종이어서 우리의 토종닭만큼 육질이 뛰어나거나 맛이 좋지는 않다. 이 브로일러가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우리 식탁에 오르는지 보도록 하자.

어떻게 태어나 어떻게 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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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클릭하시면 더 자세한 인포그래픽스를 볼 수 있습니다. /조선닷컴 인포그래픽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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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고통 1. 좁은공간, 무창계사, 알 낳는 기계
인공부화기를 통해 수정 21일만에 태어난 병아리들이 자라는 곳은 일명 무창계사라고 불려지는 곳이다. 무창계사는 창이 없는 계사(닭 사육장)로 환기구를 대신 가동한다. 현행 축산업(2017년 1월 기준)에서 산란계 1마리의 최소 사육면적은 0.05㎡(25×20㎝)로 A4 용지 크기(0.06㎡)보다도 작은 공간이다. 이곳에 올 때 병아리들은 대부분 부리가 잘린다. 좁은 공간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로 다른 닭이나 달걀을 쪼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산란계는 인공조명으로 수면시간을 조정, 24시간 내내 알을 낳는다. 보통 산란계 닭들이 낳는 알의 갯수는 250개 내외이지만, 인공조명과 산란촉진, 케이지사육을 통해 많게는 360개 정도로 늘리고 있다.

닭의 고통 2. 태어난지 30일 만에 도축, 살찐 병아리
육계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좁은 공간에 분뇨와 암모니아 냄새에 뒤덮인 채 본능적 행동인 날개짓과 모래 목욕은 아예 할 수 없다. 닭의 자연 수명은 8~10년, 야생에서는 20년도 사는 닭이 있다고 하나 이곳 육계의 평균 수명은 한두달 남짓이다. 보통 정상적인 병아리가 영계로 성장하는데는 6개월이 걸리지만 이곳의 닭들은 적은 사료로도 짧은 시간에 빨리 살이 찔 수 있도록 개량된 종으로 더 살을 찌우기 위해 비좁은 아파트형 우리에 가둬 키운다. 그렇기 때문에 관절이 뒤틀려 걸음을 걷지 못하거나 급사하는 닭들도 많다. 사실상 닭이라고 부르기에는 어린 병아리이다. 비위생적 환경에서 비정상적인 발육을 한 병아리들이 닭이라고 식탁에 올라오는 것이다.

누구는 걸리고 싶어 걸리나, AI

AI가 뭐길래
AI(avian influenza, 조류 인플루엔자 또는 조류 독감)은 말 그대로 모든 조류들이 걸리는 인플루엔자(유행성 독감)이다. 우리나라에는 2003년 처음 발생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철새 조류의 분비물이 지목되고 있다. 철새가 옮기지만 닭·오리 등 가금류의 감염률이 높아 직접적으로 우리의 가축 생태, 식품 건강, 인간의 안전에도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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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무서운 이유
문제는 이 질병이 인수공통감염병에 속한다는 것이다. 인수공통감염병, 즉 사람과 짐승이 함께 감염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처음 AI는 조류에만 급성 전염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인 줄로 알았으나, 지난 1997년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변종에 감염되어 사망한 희생자가 홍콩에서 발생한 이후로 이 바이러스가 조류의 배설물 등을 통하여 사람에게도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AI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전파가 빠르고 병원성이 다양해 전세계적으로 발생 추이와 양상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종국에는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전염병으로 바이러스 형태가 변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112건의 AI가 발생했다. 대규모 AI는 대략 7건 정도이다. 최근에는 거의 해마다 일어나고 있고, 지난 2016년 말에 일어난 AI는 단기간에 가장 빠른 확산과 많은 살처분을 이뤄져 충격을 주었다. 특히 두개의 바이러스가 동시에 일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면서 이 AI 바이러스 변이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얼마 전 제주에서 최초 발생한 AI는 주로 겨울 철새들이 바이러스를 옮겨오던 것과 달리 여름을 앞두고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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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끝에는 생매장이…
매년 발생하는 AI로 농장 전체 닭이 산 채로 매장되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지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 AI 발생 시 내세우고 있는 주요 대책은 살처분이다. 백신으로는 자주 형태 변이를 하는 AI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남긴 2016년 겨울 AI 사태 때 살처분 된 가금류는 약 3300만 마리이며 이 중 닭은 2582만 마리였다. 전체 닭의 20% 정도 되는 수가 사라진 것이다. 이 중 상당수는 산란계 닭들이어서 결국 계란 파동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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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던 병도 생기겠다
AI로 가장 억울한 건 역시 닭들이다. 닭이 AI의 최대 희생자가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사육환경에 있다. 닭을 사육하는 계사의 밀집식·공장식 사육은 애초에 닭이 건강하게 자랄 수 없는 구조로 질병에도 취약할 수 밖에 없다.

현재 산란계 1마리의 최소 사육면적은 0.05㎡(25×20㎝)로 암모니아 냄새와 온갖 병원균과 세균, 그리고 스트레스로 뒤엉킨 공간이다. 육계를 주로 사육하는 개방 계사의 경우도 여러마리의 닭들을 밀집시켜 사육하므로 병원균과 세균이 퍼져나가기 최적의 장소다. 현재 사육방식이 닭의 면역력을 저하시키며, 동시에 저병원성 바이러스를 고병원성 바이러스로 발전시킨다는 사례와 연구들은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다.

그래서 '행복한 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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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동물복지 축산농장’으로 인증받은 전북 무주군의 한 산란계(産갻鷄) 농장. 이곳의 닭은 철제 우리에 빽빽하게 갇힌 채 사육되는 밀식(密植) 닭과 달리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다. /전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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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AI 공포로 떠는 가운데 AI 청정지역으로 인정받는 농장의 사육환경과 방식이 조명받은 곳이 있다. 전북 김제시 용지면의 한 산란계(産卵鷄) 농장. 철제 구조물로 만들어져 외부와 차단된 축사(1514㎡)에 들어가 보니 1만500여 마리의 닭이 쌀겨와 모래를 깐 바닥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1㎡당 7마리 정도의 닭이 있다. 같은 면적에 20마리를 키우는 일반 양계 농장보다 3배가량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셈이다. 자동 환기 시스템은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고 있었다.

축사에 설치된 조명은 매일 8시간 이상의 명기(明期)와 암기(暗期)가 반복되도록 자동으로 조절된다. 보통 농가에선 달걀 생산을 늘리기 위해 밤에도 불을 켜놓곤 하는데, 이 농장은 자연 상태에 가까운 환경을 유지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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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농장은 2013년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았다. 동물복지 축산농장은 동물에게 쾌적한 사육 환경을 만들어 건강한 축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제도로,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전북 지역엔 지난 2012년 농가 2곳이 인증을 받아 닭을 키우기 시작해 현재 13곳으로 늘었다. 지난 3년 동안 매년 AI가 발병해 일반 농장 151곳에서 350여만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됐지만 동물복지 축산농장 13곳의 닭은 모두 무사했다.

지난 4월 정부는 마리 당 닭(산란계)의 사육 면적을 0.075㎡로 넓히기로 했다. 현재 한 마리의 적정 사육 면적보다 50% 더 넓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학계와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고작 몇㎝ 늘리는 것이 AI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AI 바이러스는 첫 발병보다 빠른 속도로 퍼지는 전염성과 변이가 더 무서운 질병이다.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닭 자체의 면역력을 키우고 위생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닭의 불행으로 장사한다?

AI가 지난 겨울에 이어 여름을 앞두고 또 발생하자 BBQ치킨은 모든 가맹점에서 주요 메뉴 가격을 인상한 데 이어 6월 5일에도 20가지 치킨 제품 가격을 추가적으로 올렸다. BBQ는 지난 3월 평균 10% 수준의 치킨 가격 인상을 추진했다가 농림축산식품부의 제동으로 인상 계획을 철회했지만 이번 다시 발생한 AI 등을 이유로 제시하며 가격을 올렸다.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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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렇게 올려야만 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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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에서는 지난해 말 AI 파동으로 닭 공급량이 줄어 닭고기의 공급 원가가 상승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실제로 한국육계협회의 자료를 보면 1600원 정도인 생계 닭은 지난 3월 2600원(소(小)기준, ㎏당)까지 올랐고, 보통 2000원대 후반에서 3000원대 초반에 형성돼 있는 닭고기의 가격(치킨용 9·10호 닭 기준)은 AI가 장기화되자 4000원대까지 치솟았다. 이러면서 가맹점의 한 달 수입도 280만원에서 55만원으로 떨어졌다는 것. 1마리당 수익이 1200~1300원에서 260원으로 폭락한 결과다. 이런 상황에서 치킨 값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다. ▶기사 더보기

그럼 닭고기 가격 내려갔을 때는?
그렇다면 닭고기 가격이 내려갔을 때 치킨 가격을 어땠을까. 2015년 말 닭의 공급물량이 많아지면서 닭고기 가격이 1㎏당 1000원대 초반에 형성된 적이 있다. 닭 가공업체와 치킨 프랜차이즈 점에서 주장하는 한 마리 당 가격으로 쳐도 2000원이 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떨어지는 닭값에도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은 2만원에 육박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당시 재료비의 비중을 나타내는 매출원가율은 계속 떨어졌으나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영업이익은 계속해서 높아졌다. 닭고기 가격 하락이 영업이익에 영향을 미쳤으나 치킨 값은 그대로이거나 슬쩍 올리는 업체들이 많았다.

당시 프랜차이즈 본사의 항변은 닭값 하락이 치킨 업체에 공급되는 닭고기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 프랜차이즈 업체 고위 관계자는 "닭에 밑간을 하고, 자르는 등 가공한 닭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산지 가격과 가공한 닭의 가격이 연동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견 치킨 업체 또봉이통닭은 오는 20일부터 한 달간 주요 메뉴 가격을 평균 5% 인하하기로 했다. 또봉이통닭은 AI로 닭고기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던 지난 3월에도 모든 메뉴 가격을 평균 5% 인하했었다.

또봉이통닭 측은 "대부분의 치킨 업체가 닭고기 업체로부터 6개월~1년 장기 계약을 통해 닭을 공급받기 때문에 AI로 인한 생닭 값 상승은 치킨 값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역시 A.I로 인해 일시적으로 가격 상승이 있긴 하지만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닭고기 제조업체와의 일괄 계약을 통해 신선닭을 공급받을 수 있으므로 일시적인 가격변동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인류 전체에게도 '복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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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한국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도 중요한 동물이다. 과학자들은 '닭이 사라지면 인간 사회는 무너진다'고 예측한다. 네덜란드 환경평가국은 닭고기를 무게가 같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로 대체하려면 더 많은 토지와 사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환경 피해는 더 심각하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닭과 달리 소는 되새김질을 하면서 온실가스인 메탄을 트림과 방귀로 배출해 같은 무게라면 소고기가 닭고기보다 온실가스를 4배 더 배출한다. 돼지고기로 대체해도 75% 늘어난다.

또한 경제력이 약한 저개발 국가 사람들은 당장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닭고기나 달걀에는 인체가 합성하지 못하는 라이신과 트레오닌 같은 필수 아미노산이 들어 있다. 닭이 사라지면 가난한 나라부터 아미노산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한 해 전 세계에서 필요한 4억명 접종분의 인플루엔자 백신을 만들려면 달걀이 필수적이다. 바이러스를 달걀에 접종하고 거기서 단백질 성분을 정제해 백신으로 쓰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인류는 생존을 위해서도 닭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길은 지금과 같은 대량 사육 방식을 포기하는 것일지 모른다.

■ 그래픽 ┃ 신현정

[구성=뉴스큐레이션팀 권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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