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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샤워기 구멍 몰카까지 잡는 여성 보안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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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경단녀·취준생 50명 뽑아

적외선 장비, 전파 탐지기로 무장

샤워실·화장실 등 4만여 곳 점검

중앙일보

최근엔 기술이 발달하면서 샤워기 구멍을 이용한 몰래카메라도 등장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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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청파동 헬스장의 여성 샤워실. 김태성(60·여)씨가 무전기 비슷한 모양의 기기를 샤워기에 댔다. 물줄기가 나오는 작은 구멍을 찬찬히 훑으며 샤워기 3개를 모두 점검했다. 탈의실 보관함의 열쇠 구멍, 벽걸이형 방향제도 검사 대상이었다. 김씨는 “샤워기 등에 장착됐을 수 있는 몰래카메라를 탐색 중”이라며 “카메라의 전자파를 감지하면 기기가 경보음을 낸다”고 설명했다.

김씨와 동행한 박광미(49·여)씨는 붉은빛을 쏘는 적외선탐지기의 렌즈(8㎜)에 눈을 대고 샤워실의 타일 틈을 꼼꼼히 확인했다. 신용카드 크기의 탐지기에서 나오는 적외선이 몰래카메라를 반사하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면 손이 닿기 힘든 탈의실 천장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다.

한 시간에 걸쳐 헬스장을 이 잡듯 살핀 두 사람은 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이다. 이날 용산경찰서 생활안전과 김보람(29) 순경도 함께 단속에 나섰다. 김 순경은 탈의실에 놓인 시계·로션 등을 가리키며 “혹시 못 보던 물건이 있느냐”고 헬스장 관리인에게 묻는 등 탐문조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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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이 청파동의 한 여성 화장실에서 전자파탐지기로 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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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장 점검을 마친 이들은 인근 주민센터의 공중화장실로 이동했다. 김씨와 박씨는 번갈아 가면서 탐지기를 이용해 변기와 휴지통 안을 살폈다. 화장실 문에 박힌 나사못까지 훑었다. 화장실 한 칸을 살피는 데만 20분이 걸렸다. 이들은 “폭발물처리반보다 더 신중하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며 웃었다.

서울시 여성안심보안관은 20~60대 여성 50명으로 구성됐다. 서울시가 지난해 8월부터 몰래카메라 범죄 예방을 위해 운영 중이다. 경력단절 여성과 취업준비생들을 중심으로 인터뷰 등을 거쳐 선발했다. 매월 한 차례 보안업체 전문가에게서 교육을 받는다. 신종 몰래카메라 출몰지나 새로 개발된 카메라 종류 등을 숙지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지난 3월까지 9개월간 4만431곳을 점검했다. 김씨는 “몰래카메라를 숨기는 장소가 상상을 초월한다. 렌즈가 바늘구멍(1㎜)만 한 카메라까지 있다. 그래서 구멍이란 구멍은 다 훑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무에 어려움도 많다. 건물주가 “우리 건물엔 그런 거 없다”고 거부하거나 되레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몰래카메라를 찍다가 걸리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서울에서 발생한 관련 범죄 건수는 2012년 990건에서 2015년엔 3638건에 달했다.

처벌과 단속에도 불구하고 ‘몰래카메라 공포증’은 확산되고 있다. USB·단추·펜 등 일상용품처럼 생긴 100여 종의 카메라를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현실 때문이다. 입법 청원 사이트 ‘국회톡톡’에선 네티즌 1만6000여 명이 ‘몰래카메라 판매 금지법’에 서명했다. 김 순경은 “몰래카메라로 의심되는 물건을 발견하면 떼어내지 말고 지문 채취와 범인 검거를 위해 112에 신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선영 기자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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