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겨우 보름을 넘겼지만, 국민들은 기대만큼이나 염려도 많다. 이전 민주정부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집권세력만의 다짐이 아니라 시민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그러나 집권당은 국회 소수당이라서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고 정치적 과제를 푸는 과정에 장애물이 많다. 추운 겨울 내내 시민들이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우며 어렵게 성취한 조기 정권교체이다. 기반이 취약한 민주정부를 잘 이끌기 위해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 저항을 허물어버릴 시민적 실천이 모든 분야에서 요구된다. 이는 정권교체라는 촛불혁명의 첫 단계를 잇는 후속 단계이며, 대학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필요하다.
대학의 촛불혁명을 시작하려면 크게 망가진 우리 대학을 위해 급히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새 정권은 국회의 협력 없이도 가능한 세 가지 과제를 앞세워야 한다.
첫째, 교육관료와 부패비리사학, 관변학자들이 중심인 ‘교육 마피아’의 부정과 불법을 다스려야 한다. 그들이 일으킨 문제의 상당수는 기존의 법과 규정만 잘 지켜도 해결되지만, 교육 분야의 적폐 또한 뿌리 깊어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먼저 대학운영에 평교수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도록 도와야 한다. 감히 ‘민중 개·돼지론’을 입에 올리던 썩은 관료층을 일신하고 그동안 억눌려온 양심적인 공무원들이 실력을 발휘하게 해야 교육부의 투명하고 공정한 감독이 가능하다. 감사원과 검찰도 엄정한 역할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대선 공약인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역할 조정, 비리당사자 복귀 금지 및 임시이사 파견요건 확대, 감사 및 회계 감리 강화 등도 해낼 수 있다. 물론 정치권과 이익단체의 끈질긴 반발을 만날 것이다. 정부 지원과 국민 세금으로 키운 공공 자산인 사학을 ‘사학 소유주’의 배타적 사유재산으로 보는 적폐는 뿌리 깊다. 2006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가 사학법 재개정 투쟁을 주도하여 거둔 승리가 훗날 대통령 당선의 밑거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대학 구조조정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학령인구의 급감으로 인해 앞으로 10년 안에 10만명 내외의 대학 입학정원 감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기존 정책은 교육 마피아의 기득권을 챙기려는 꼼수가 대학의 공공성을 망각한 시장주의적 기조와 버무려져 가히 악취를 풍기고 있다. 입학생 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이라는 엉뚱한 지표를 주된 평가척도로 삼아 정원 감축과 대학 통폐합을 강제한 결과, 수도권과 지방의 대학 격차 악화, 기초학문 몰락 등 부작용이 엄청나다. 학생 1인당 교육비, 교원 충원율 등 고등교육 발전에 합당한 지표와 평가틀을 강화하고, 수구세력이 벌써 세 번째 국회에 상정한 대학 구조조정 법안도 폐기해야 한다.
셋째, 대학 재정지원사업을 원점에서 재점검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을 명분으로 국립대 운영 예산을 제외한 일반재정지원사업을 몽땅 없애고 특수목적지원사업으로 바꾼 것이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이었다. 이후 규모와 종류를 부풀려온 특수목적지원사업은 그야말로 돈줄로 대학을 굴복시키고 망치는 독약이 되고 말았다. 선거 공약에도 나오듯이 재정지원사업을 재검토하여 투명한 개폐 일정을 세워 실행하고 남는 예산을 더 급하고 중요한 일에 써야 한다.
이 선결과제들만 잘 수행해도 우리 대학은 몰라보게 달라진다. 물론 충분하지 않다. 대학 구성원 중 특히 교수들이 바뀌어야 탁월한 연구를 낳고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을 만들 수 있다. 심지어 교수들이 비정규직 문제라는 절실한 사회적 현안에 앞서가는 모범이 될 수도 있다. 한국 대학의 교수 대 학생 비율은 국제적으로 매우 열악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교수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비정규직 교수의 처우는 등록금 동결이나 정부 재정 부족과 상관없이 당장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교수 자리를 크게 늘리는 정규직 전환 정책은 구조조정이 닥친 상황에서 막대한 재원까지 드니 비현실적이다. 그보다는 정규직 급여를 당분간 동결 내지 삭감해서라도 비정규직을 위한 재원을 만드는 동시에, 교육부가 강요해온 성과연봉제나 낡은 연공서열제를 극복하는 공정한 보수체계의 틀을 짜는 등 교수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한다.
이 어려운 일이 타협과 양보 속에 달성된다면 2단계 촛불혁명의 신호탄일 것이다. 교수사회는 고용 불안과 형편없는 급여에 시달리는 동학들을 같은 교원으로 대접해야 사회적 권위와 신뢰를 지킬 수 있다. 극심한 경쟁과 불투명한 전망에 지친 젊은이들의 스승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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