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과율 상향 땐 기업 숨통 죈다”우려, 맞는 말일까
2012~2014년 롯데마트는 매장에 광고할 공간이 없음에도 납품업자들로부터 광고비 3억여원을 뜯어내고, 진열장려금·성과장려금 40억원가량을 미리 받았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덜미를 잡혔다. 갑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근거가 없는 돈을 받았고, 을은 거래 단절이나 매장 위치 선정 등에서 불이익이 생길까봐 주지 않아도 되는 돈을 준 것이다.
그러나 롯데마트에 부과된 과징금은 ‘0원’이었다. 롯데마트가 자체 감사로 이를 인지하고 있었고 공정위 현장조사 전후로 자진 시정했다는 점이 감안됐다. 결과적으로 롯데마트는 3년에 걸쳐 43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납품업체들은 그만큼 손해를 봤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지난 24일 “불법행위로 인한 불이익이 매우 커지는 방향으로 과징금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히자 재계는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김 후보자가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기업 담합 등에 적용되는 과징금을 두고 “미국·유럽연합 등 선진국에 비해 낮은 것은 사실”이라며 “과징금 부과 기준율과 부과 한도를 상향하고 법 위반 반복 시 가중치를 높이겠다”고 말한 데 대해 ‘기업 숨통을 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진짜 그럴까. 오히려 주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과징금 수준이 낮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왔다. 애초 법이 정한 과징금 제재 수위가 낮은 것도 이유다. 하지만 법적 허점 탓에 처벌이 느슨하거나 ‘경제적 파급효과에 비해 과도하다’, ‘현실적 부담능력에 비해 지나치다’, ‘경기 사정이 좋지 않다’ 등의 이유로 과징금이 감경되는 경우도 허다했다는 점도 주된 이유다.
김일중 성균관대 교수가 국회 예산정책처에 제출한 ‘과징금 제도 운영 현황 및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를 보면 2005~2015년 부당공동행위(담합) 369건의 관련 매출액 대비 실제 과징금 부과율 평균은 2.5%에 그쳤다. 현행법은 담합 과징금 상한을 관련 매출액의 10%로 정하고 있다.
미국은 관련 매출액의 20%, 유럽연합(EU)과 영국은 30%를 과징금 상한으로 정하고 있다. 실제 이들 국가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도 관련 매출액의 15~2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과징금 부과율, 상한을 올려도 기업이 물어야 할 실제 과징금은 높아지지 않을 수 있다. 2012~2016년 공정위가 하도급법을 어긴 업체에 매긴 기본 과징금은 4534억원이었으나 조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부과한 과징금은 593억원에 그쳤다. 자진 시정 여부나 조사 방해 등 가중·경감 요소를 판단한 뒤 기업 부담 능력이나 시장 상황, 경제 여건 등을 고려해 과징금을 대폭 조정한 결과다. 과징금을 높일 경우 공정위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것도 넘어서야 할 과제다. 법원에서 패소할 경우 공정위에 돌아오는 타격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과징금을 부과하기 위한 사전 조사, 경제 분석 기능을 강화해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결국 공정위의 조사 권한을 강화하는 쪽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광식 연세대 교수는 “정부 권한만 강화하는 과징금에 집착하기보다 시정조치를 효과적으로 만들고 징벌적 손해배상제, 집단소송제 등으로 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는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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