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 운동의 원형을 찾아서
-1970~1990년대 민중의 마을 만들기
빈민지역운동사 발간위원회 엮음/한울엠플러스·3만6000원
한국 근현대사는 성장 중심의 맹목적인 경제개발 속에서 삶터를 지키기 위해 끈질기게 투쟁했던 사람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60년대 후반부터 가속화한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는 수많은 도시빈민을 낳았고, 이들은 살기 위해 힘을 모아 ‘공동체’로 뭉쳤다. 여기엔 “운동가는 운동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주민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함께 주민이 되어 투쟁했던 운동가들의 구실도 컸다. <마을공동체 운동의 원형을 찾아서>는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수도권 각 지역에서 분투했던 운동가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민중의 마을’ 만들기 역사를 짚어본 책이다. 2013년 조직된 ‘빈민지역운동사 발간위원회’가 엮었다.
한국 주민운동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은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의 출범이다. 1968년 연세대 부설 도시문제연구소가 설립됐는데, 도시문제연구소는 ‘도시선교’ 분야의 활동을 위해 박형규 목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도시선교위원회’를 설치했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 사건을 겪은 뒤 좀 더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1971년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가 조직됐다. 여기에는 미국의 조직 운동가 솔 알린스키(1901~72)와 브라질의 민중교육학자 파울루 프레이리(1921~97)가 큰 영향을 줬다. 알린스키는 조직론과 실천 전략에, 프레이리는 야학운동, 노동교육 운동 등 민중의 의식화 교육에 기여했다고 한다.
복음자리 마을 건축 현장에서 시멘트벽돌을 찍어내고 있는 제정원(맨 왼쪽부터), 제정구, 마을 주민들과 정일우(맨 오른쪽). 빈민지역운동사 발간위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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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위원회는 경기도 시흥의 철거민 정착촌, 성남시의 구시가지, 서울의 관악 지역, 노원·도봉 지역, 성북·강북 지역, 성동 지역, 인천 지역 등 일곱 군데를 선정하고, 이곳에서 벌어진 주민운동의 역사를 상세히 담았다. 대표적으로 경기도 시흥의 경우를 보면, 서울의 대규모 재개발로 철거당한 사람들이 1977년부터 시흥에 새 삶터를 꾸렸는데, 학생운동으로 제적된 제정구와 미국 태생 천주교 신부 정일우(존 데일리) 등이 이 과정에서 활동했다. 복음자리·한독주택·목화마을 등의 철거민 집단 정착촌이 잇따라 만들어졌고, 이들은 ‘복음자리잼’ 등 생산공동체 사업까지 벌였다.
1990년 발족한 서울 월곡동주민단체협의회가 주민 참여 행사를 열고 있는 장면. 빈민지역운동사 발간위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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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를 오갔지만, 각 지역의 주민운동들은 공부방 운영, 어머니회 등의 모임뿐 아니라 생산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등 주민들의 다양하고 실질적인 욕구를 현실로 이뤄내는 사업까지 벌였다. 무엇보다 운동가들이 어떤 목적을 갖고 주민들의 삶에 의도적으로 개입하려 하지 않고, 주민 스스로 하는 일을 함께 하며 “그들과 함께 그냥 살았다”는 데에 주민운동의 대원칙이 있었다고 짚는다.
발간위원회는 “1970년대부터 빈민지역에서 벌여왔던 주민운동의 목적과 원리가 실은 오늘날의 ‘마을공동체 조직하기’와 전혀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과거 경험에서 지금의 공동체 운동가들에 배우고 차용할 것이 꽤 많으리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당시의 운동가들이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어떻게 했나’를 생생히 전달한다.
최원형 기자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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