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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착함’의 기원, 뇌과학으로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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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기법 활용

이타주의의 신경과학 원리 규명

“보수-진보, 뇌구조 서로 다르다”


한겨레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 -뇌과학, 착한 사람의 본심을 말하다
김학진 지음/갈매나무·1만6000원


각각 세 명의 대학생으로 구성된 그룹 간의 게임. 한 명이 물이 담긴 통 밑에 앉고 같은 팀 동료들이 공을 던져 표적을 맞히면 물통이 뒤집히면서 쏟아진다. 표적을 더 많이 맞힐수록 더 많은 상금이 주어지고 팀원들이 이를 나눠 가진다. 실험 뒤 조사에서 대부분의 팀들이 가장 높은 공헌을 한 사람으로 희생자 역의 물통 아래 동료를 꼽았다. 그 사람이 가장 호감도가 높았고 배당금도 많았으며, 다음에도 같은 팀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꼽혔다. 팀원 중 여성이 한 명 끼었을 경우 나머지 두 남학생 간에는 서로 희생자 역을 맡으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이타적인 행동의 진화론적인 이점을 알아보기 위한 이 실험은, 이타적 행동이 당장은 괴롭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높은 이득을 안겨주는 전략적 행동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기찻길에 떨어진 사람을 보고 순간적으로 몸을 날려 구하려다 숨진 사람의 경우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의 행동을 통해 얻게 될 사회적 평판이나 장기적으로 생존에 더 유리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을 할 겨를이 있었을까? 그것은 그야말로 순수한 이타적 동기의 발로였을까, 아니면 이타적 행동전략이 오랜 개인적·사회적 경험을 거쳐 자동화된 결과였을까?

이타적인 선택의 신경학적 기제를 연구해 온 김학진 고려대 교수(심리학·사회신경학)의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구조>는 “다양한 도덕적·윤리적 판단, 그리고 친사회적 행동의 기저에 있는 심리학적·신경과학적 원리들에 대한 최근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고, “공감과 도덕성, 이타심처럼 지금까지 인간만의 고귀한 본성으로 여겨졌던 심리가 뇌의 어떤 활동에서 기인하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모든 친사회적 행동과 이타적 동기의 근원에는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호감을 받고 싶은 마음(인정 욕구)이 있음”을 확인한다.

그 마음, 즉 사랑·공감·이타성 같은 고귀한 본성으로 여겨지는 인간 심리는 결국 뇌의 작용이며, 뇌는 우리 몸의 항상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면서 쉼 없이 최적의 선택을 한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기법(fMRI)을 활용해 뇌 신경세포들의 활동을 조사해 보면, 돈이나 음식을 얻기 위해 특정 행동을 지속할 때와 타인의 칭찬이나 좋은 평가를 이끌어내는 행동을 할 때 뇌의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거의 똑같이 활성화된다. 김 교수는 돈·음식 같은 직접적 보상과 칭찬·호평 같은 사회적 보상을 이끌어내는 행동 사이에는 “신경학적 수준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고 얘기한다.

한겨레

2007년 12월7일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 당시 충청남도 태안 앞바다 기름 제거 작업에 몰려든 자원봉사자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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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바로 이 인간의 이타적 행동의 생물학적 기원, 신경학적 기제를 뇌 활성부위 조사와 같은 과학적 증거를 통해 확인한다는 데에 있다. 배내측 전전두피질, 복내측 전전두피질, 뇌섬엽, 측두-두정 접합부, 측핵, 편도체 등의 활성화 연구가 흥미롭다. 대한항공 ‘회항’ 사건을 실세의 ‘인정 중독’과 분노조절장애로 설명하고 질투와 복수, 이타적 처벌자의 순기능을 얘기한 부분도 새롭다.

지은이는 도덕성과 이타성의 기저에 인정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 이타성 뒤에 숨은 이기심에 대한 의심과 비난이 높아지고, 불의에 항거하는 이타주의자들이 출현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얘기한다. “그런 주장은 마치 인간의 생리작용과 대사작용을 이해하면 식욕이 사라질 것이라 걱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우에 불과하다.”

도덕성과 이타성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냉철한 자기 인식은 철학자 피터 싱어가 얘기한 ‘효율적 이타주의’(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운동)와도 연결된다. 싱어는 저서 <효율적 이타주의자>에서 “타인을 도울 때 더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예컨대 오늘도 죽어가고 있는 세계 수십만명의 아이들보다 미디어가 찾은 단 한 명의 불행한 아이에게 모든 온정의 손길이 몰리는 역설적인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효율적 이타주의는 이런 자세를 지양한다.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뇌 구조가 다르다. 진보주의자는 배내측 전전두피질이 두껍고 보수주의자는 복내측 전전두피질이 두껍다. 복내측 전전두피질은 직관적이고 자동적인 선택의 가치를 계산하는 부위이고 배내측 전전두피질은 더 분석적인 가치판단을 담당하는 부위다. 그래서 보수는 이전의 성공 경험을 토대로 검증된 가치를 안정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을 지지하는 반면, 진보는 관습처럼 굳어져버린 가치와 변화하는 상황 간의 충돌을 감지하고 유연하게 기존가치를 수정하거나 전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낸다. 그럼에도 둘은 독립적이되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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