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지역 ‘세계의 배꼽’으로
몽골 ‘파괴자 아닌 건설자’ 재조명
유럽 석유 독점으로 근본주의 싹터
중, 다시 실크로드 주역으로 복귀
미국과 거대한 체스판 위 게임 시작
실크로드 세계사-고대 제국에서 G2 시대까지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재황 옮김/책과함께·5만3000원
학창시절 기억을 떠올리며 세계사 문제부터 풀어보자. (1)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는 왜 하필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갔을까? (2) 8세기 북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간 무슬림 군대는 왜 파리 코앞에서 멈췄을까? (3) 13세기 폴란드와 헝가리까지 쳐들어갔던 몽골군은 왜 진군을 중단했을까?
<실크로드 세계사>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해 모두 “유럽이 보잘것없어서”라고 답한다. 정복의 열기에 들떠 있던 이방의 침략자에게 유럽은 매력적인 곳이 아니었다. 화려한 도시도 찬란한 문화도 없었다. 정복자들은 넘쳐나는 힘을 유럽 대신 페르시아로, 중국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특히 (2)번에 대한 설명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교과서는 전설적 영웅 카를 마르텔이 이슬람 군대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겨 기독교 유럽을 지켜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책은 “서유럽에서 얻을 가치가 있는 전리품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볼품없는 유럽을 보고 열정이 식어버린 것이다.
실크로드에는 많은 난관과 장벽이 있다. 파미르 고원에 있는 타슈쿠르간 석축 요새는 실크로드 통행자들의 중요한 관문이었다. 책과함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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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피터 프랭코판(역사가·영국 옥스퍼드대 우스터칼리지 선임특별연구원)은 기존의 유럽중심주의 역사관을 완전히 뒤엎는다. 지구가 도는 중심축은 동방과 서방 사이에 놓여 유럽과 중국을 연결해주는 지역, 즉 실크로드라고 역설한다. 이 길을 따라 순례자와 전사, 유목민과 장사꾼이 여행하고 먼 곳에서 온 물건이 거래됐다. 사람이 몰리고 도시가 솟았으며 부가 축적됐다. 지은이는 이들 지역을 ‘아시아의 등뼈’ 또는 ‘세계의 중심’으로 부른다. 이곳에서 심장이 맥동했으며 유럽은 가느다란 실핏줄에 불과했다. 유럽에도 한국과 일본식 극우가 있다면 ‘자학사관’이라고 핏대를 올릴 만한 이야기들이 널려 있다.
가장 도발적인 이야기는 칭기즈칸이 이끈 몽골 군대다. 유럽의 자료들은 몽골군의 지독한 야만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아무도 살려두지 않았다. 여자와 남자와 아이들을 죽였고 임신부의 몸을 베어 열고 태아를 도륙했다.” 그러나 프랭코판은 몽골인들이 공포를 의도적으로 섬세하게 조장했다고 말한다. 한 도시를 철저하게 약탈하면 다른 도시들이 평화적으로 그리고 금세 항복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몽골인들은 문명의 파괴자라기보다는 창조자였다. 자기네가 점령한 도시에 돈과 사람을 투입해 건설을 하고 활력을 불어넣었다. 사마르칸트를 점령한 직후 중국에서 많은 기술자들을 불러들여 이전에는 황폐했던 들과 과수원 운영을 도왔다는 기록을 프랭코판은 제시한다. 몽골인들은 심지어 자유무역의 옹호자였다. 몽골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흑해의 항구에서는 수출품에 대한 세금이 3~5% 정도여서 수출입이 활발했다. 당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드나드는 물품에 부과됐던 통행세가 10~20%, 심지어 30%까지였던 것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래서 프랭코판은 “몽골의 성공은 무분별한 만행으로 거둔 것이 아니라 타협하고 협력한 덕분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다.
그러나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서양이 세계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고, 실크로드 지역은 주류 역사 서술에서 변방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실크로드 지역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면서부터다. 과거 비단의 자리를 석유가 차지했다. 비단의 부드러운 감촉이 아니라 석유의 역겨운 냄새가 이 지역을 덮었다.
박트리아 낙타를 탄 소그드 상인을 묘사한 도자기. 당나라 때의 것이다. 책과함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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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영국이 페르시아의 석유 이권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심지어 폐하의 담뱃대와 아침 커피를 대령하는 시종까지” 돈을 먹여가며 페르시아 정부로부터 석유 이권을 확보한다. 그렇게 얻은 권한은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서 60년 동안 천연가스, 석유, 아스팔트, 지랍을 탐사하고 채굴하고 개발하고 정제하고 (…) 판매하는 특수하고 배타적인 권리”다. 이권을 따낸 사람은 윌리엄 녹스 다시라는 사업가지만 영국의 총력 지원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인물이 영국 해군부 장관 윈스턴 처칠이다. 처칠이 앞으로 바다의 지배는 석유에 달려 있다고 보고 제국의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여기서부터 이슬람 근본주의가 싹텄다. 페르시아 국가의 보물에 대한 통제권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은 서방에 대한 뿌리 깊고도 지긋지긋한 증오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증오는 현재 진행형이다.
유럽의 강대국들은 아시아의 등뼈를 차지하기 위해 두 차례의 대전을 거치며 서로 싸웠으나 2차 대전 이후 정작 등뼈에 올라탄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이 실크로드 지역에서 펼친 음모와 배신의 추잡한 역사를 프랭코판은 넌지시 들려준다. 가장 압축적인 건 1979년 호메이니가 한 연설일 것이다. “동방의 모든 문제는 서방에서,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서 온 외국인들 때문에 생겼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미국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실크로드에 새로운 주역이 등장했다. 아니 애초 실크로드를 열었던 태초의 개척자니 ‘복귀’라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중국이다. 기원전 119년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둔황을 차지하면서 실크로드를 열었듯이, 이제 새로운 실크로드를 누비는 나라는 중국이다. 시진핑은 2013년에 일대일로 전략을 제시하며 거대한 구상을 드러냈다. 과거 비단을 실어날랐던 중국인들은 이제 유선케이블망을 통해 정보를 통제하고 송유관을 통해 석유를 실어나르며 철도를 뚫어 자원을 이동한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사이의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상하이협력기구(SCO)는 점점 영향력이 커져 유럽연합(EU)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조직으로 변모하고 있다.
새로 짠 비단을 손질하는 여인들. 12세기 초 송나라의 황제 휘종이 그린 그림이다. 책과함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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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를 지켜보는 미국의 시선이 곱지 않다. 오바마의 아시아 회귀 전략은 이런 심리에서 태동했다. 그리고 결연히 외친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재조정해야 합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식으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체스판을 앞두고 미국과 중국이 바야흐로 엄청난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이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지적 희열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실크로드의 한쪽 끝에 있는 한반도의 운명은 어찌 되는지 더 답답해진다. 그래도 대륙의 흙먼지 속에서 이는 힘의 충돌을 뚫어져라 주시해야 우리의 길이 열린다는 걸 이 책은 가르쳐주고 있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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