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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사람제사와 성종 임금의 흑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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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경주 월성의 성벽 기단부에서 인골 2기가 발견됐습니다. 그저 휩쓸려 들어가 묻힌 것일까요.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람제사의 희생물로 그곳에 묻힌 것입니다. 성벽을 튼튼하게 만든다는 명목으로 제사상을 차렸고, 두사람이 희생물이 된 것이지요. 인골이 발견된 성벽의 연대가 5세기 무렵이었으니까 1500년 전 신라의 상황이네요. 이게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00년에는 경주의 한 우물에서 10살짜리 어린아이 인골이 거꾸로 박힌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제사에 사용된 다른 동물들의 뼈가 수두룩했고, 제사용 토기들도 즐비했습니다. 국가적인 제사행위가 있었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이 불쌍한 어린아이 역시 제사의 희생물이 된 거죠. 이 인골이 묻힌 연대는 9세기 무렵이니까 1100년 정도 된 것인가요.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듣기


가만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랬으니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어땠겠습니까. 사람제사의 공포가 채 가시지 않았겠지요. 고려때도 조선때도 뭔가 민심이 흐트러질 때마다 사람제사의 유언비어가 돌았습니다. 어린아이를 희생물로 바쳐야 건축물이 튼튼해진다는 따위의 소문들이었죠. 심지어 세종에 버금가는 성군으로 추앙받는 성종 시대에도 사람제사의 소문이 퍼졌습니다. ‘성종 임금의 흑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그리고 왜 옛 사람들은 생사람을 잡아 제삿상에 바쳤을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가 전해드립니다.

<이기환 논설위원 http://leekihwa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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