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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미국의 ‘짝퉁 자본주의’, 남 일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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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잠깐 독서

한겨레

거대한 불평등-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이순희 옮김/열린책들·2만5000원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신간. 전작 <불평등의 대가>(2013)의 보급판이랄까. 신문, 잡지에 실은 칼럼들이어서 잘 읽힌다.

논의의 핵심은 시장경제를 맹신함으로써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괴물을 만들었다는 것, 그 결과 1%, 나아가 사회 자체의 존속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1%가 당장은 잘 먹고 잘 살지 모르지만 그들의 토대가 되는 99%가 무너지면 1%도 살 수 없으니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 이야기인데 우리 것으로 읽힌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미국에 동조돼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공공의 인터넷 인프라를 바탕으로 성장한 아이티(IT) 기업이 과실을 독차지하는 것. 현대판 ‘지대’인 독점적 권리, 또는 세금우대 정책으로 저소득층한테 가야 할 부를 부유층한테로 옮겨주는 일. 최근 문제가 되는 카드 수수료, 휴대전화 기본료도 그렇다. 정부가 대마불사 똥배짱 기업에 보조금 퍼붓고, 실직 노동자한테는 고작 석달 실업급여를 주는 현실은 어떤가. 학자금 대출로 사회 초년생들이 빚쟁이로 출발하며 미래를 좀먹고 들어가는 현상을 두고 봐야 하는가. 파산한 디트로이트시는 어떤가. 부자와 빈민 거주지가 철저히 분리돼 부유한 지자체가 저소득층에 공급되는 공적서비스 비용 분담을 거부한 사례는 서울 강남구를 연상케 한다. 당연히 여기는 현상을 새롭게 보게도 한다. 경영자한테 주는 스톡옵션. 주식가치 상승분에서 큰 몫을 떼어줘야 경영자가 전력을 기울인다는 건데,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가.

지은이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짝퉁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본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주주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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